대상물의 의미를 파악하는 방법
우리가 대상물의 의미를 어떻게 파악하는지에 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에서 주고받는 말에 대해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때 우리 머릿속에서는 어떠한 일들이 진행되는지, 그리고 언어적 발화를 생산하고 이해하기 위해 어떤 지식에 의지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듭니다. 언어는 생각을 표현하거나 대상세계에 대해 진술하는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됩니다. 철학자 하이데거(Heidegger)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했고, 문예이론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언어가 현실을 만들어낸다'라고 보았습니다. 소설가 보르헤스(Borges)는 이 세상을 아예 도서관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철학자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라고 언명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이 말은, 사람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을 토대로 생각을 표현하므로, 언어적 한계는 자신의 지식 또는 세계의 한계를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사고와 인지력은 언어로 만들어지고 언어로 키워집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에게 언어가 없다면 어떻게 새로운 지식을 배울 것이며, 과거의 경험을 어떻게 전달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언어는 인간이 자신의 세계를 키워가는 토대이자 모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언어적 능력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은 곧 자신이 인식하고,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영역이 어디까지인가를 규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어휘가 적은 민족이나 종족일수록, 세계를 인지하고 대응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입니다. 예컨대,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의 원주민이 사용할 수 있는 어휘는, 문명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 턱없이 적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컴퓨터를 알 리 없는 그들이 인터넷이니, 스마트폰이니 하는 용어를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만큼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어휘는 당연히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의미란 무엇일까요? 의미는 작게는 낱말 의미, 즉 어휘 의미에서부터, 크게는 문장 의미, 상황과 맥락을 고려한 화용적 의미, 그리고 텍스트 의미에까지 걸쳐 있습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의미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단위인 낱말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한 낱말의 의미는 언어 표현과 연결되어 있고, 세상에 대한 정보를 저장하고 있는 정신적인 단위라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의자'라는 낱말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대략적으로 말해 보면 됩니다. '의자'가 나타내는 의미는 '가구', '앉기 위한 것', '팔걸이가 있는 것', '한 사람을 위한 것' 등과 같이 여러 가지 정보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머릿속에 저장된 정보들을 '개념적 정보'라고 합니다. 보통 언어학에서 의미를 다루는 분야를 의미론이라 합니다. 의미론은 언어와 정신, 그리고 세계 간의 관계에 관련된 문제를 다룹니다. 의미론이 의미에 관한 학문이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낱말의 의미를 알고 있다면, 우리는 의미론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의미론은 세상에 대한 이해와 해석의 과정을 통찰하도록 도와주고, 보다 나은 자기 이해를 위한 열쇠가 됩니다. 우리는 말을 주고받거나, 글을 읽고 쓸 때, 우리 안에서 근본적으로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다 분명하게 인식하게 됩니다. 의미의 문제에 천착하다 보면 사물을 관찰하고 일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좀 더 예리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범주/범주화란 무엇인가?
우리가 대상세계를 어떻게 파악하고 이해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언어와 인지(認知, cognition)는 서로 매우 밀접하게 맞물려 있습니다. 우리가 인지하는 모든 것은 언어로 마음속에 저장됩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저장된 이러한 인지는 언어로 표현됩니다. 따라서 언어는 인지의 생산과 수용의 창구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낱말은 우리가 경험하거나 생각하는 사물과 개념, 그리고 현상을 지시하고 환기시켜주는 표지입니다. 우리가 인지한 것들은 언어의 도움을 받아 기억하게 됩니다. 하지만 낱말은 모든 사물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하지 않습니다. 또 모든 사물을 표현하기 위해서 수많은 단어를 사용한다면, 오히려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낱말의 수는 무척 많지만 각각의 모든 대상에 낱말이 일대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 낱말의 수가 무한하다면, 우리의 기억 용량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유한한 낱말로써 어떻게 무한한 외부 대상세계를 큰 어려움 없이 파악하고 수용하며 살아갈까요? 이렇게 유한한 낱말로 무한한 외부 대상을 수용할 수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사물을 '범주화(categorization)'할 수 있는 능력 때문입니다. 범주(category)'란 동일한 성질을 가진 부류를 말합니다. 그리고 범주화란 사물이나 개념이 지닌 공통적인 속성, 용도, 관계 등을 이용하여 그것들을 조직하는 것을 뜻합니다. 범주화는 개념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인간이 대상을 쉽게 구별하거나 이해하고 기억하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범주화란 달리 표현하면, '개념화(conceptualization)'라 할 수 있습니다. 범주화 능력은 인간의 사고나 지각, 행동과 발화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능력입니다. 따라서 범주화는 모든 고등 인지 활동의 근본이 되는 것으로서 다양성 속에서 유사성을 파악하는 능력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즉, 범주화는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사물이나 개념, 그리고 현상을 낱말이라는 단위를 통해서 분류하거나 무리 지어서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일반적으로 나이가 듦에 따라 범주화 전략을 사용하여 기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개별 대상을 범주별로 한데 모아서 동일 범주의 항목을 함께 학습하는 전략을 선택합니다. 예를 들어, 사과, 배, 장미, 송아지, 귤, 진달래, 강아지, 국화의 그림을 보여 주고 외워보라고 하면, 어린아이들은 처음에는 그냥 외우려는 전략을 사용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과일', '꽃', '가축'으로 범주화하여 외우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범주화는 위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체계적이고 논리적입니다. 그림에서 보듯이, 상위차원에 해당하는 '식물'은 기본차원에 속하는 '과일'과 '꽃'으로 분류됩니다. '과일'은 다시 하위차원인 '사과', '배', '감' 등으로 나누어지고, '꽃'은 '장미', '국화', '개나리' 등으로 나누어집니다. 이와 같이 범주는 계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구조주의 언어학자 소쉬르의 랑그와 파롤이나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에서 보듯이, 언어는 기본적으로 관념화되고 추상화된 개념입니다. 그리고 의미는 이러한 개념적 정보단위를 기술합니다. 가령, 우리가 '꽃'이라는 것을 떠올렸을 때, 각 개인이 인식하고 있는 '꽃'은 여기 이곳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전에 각자가 경험했던 것이 추상화되어 기억된 '개념'입니다. 개념과 범주는 동의어로 봐도 무방합니다. '꽃'이라는 상위 범주 안에는 장미, 국화, 개나리, 채송화 등과 같은 다양한 하위 범주가 포함됩니다. 장미, 국화, 개나리, 채송화는 생김새와 특징이 다르지만, 모두 '꽃'이라는 범주 안에 넣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각각의 대상들 안에서 공통된 속성을 추출하여 추상화와 관념화의 과정을 거쳐 '꽃'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꽃'과 '과일'을 구분하고, 장미, 국화, 개나리, 채송화를 식별해 내는 것은, 다름 아닌 범주화의 인지능력 때문입니다. 그런데, 의미는 정신적인 단위로서 직접적인 관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모든 의미 분석에는 정신을 들여다보기 위한 방법론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이는 정신의 지식체계가 마치 블랙박스 안에 놓여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정신의 체계를 들여다볼 수 있기 위해서는 이 상자를 열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의미를 알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의미를 기술할 수 있을까요? 의미는 대개 1차적으로는 언어직관에 의해 개략적으로 파악되고, 2차적으로는 실험적인 방법에 의해 보완됩니다. 직관적인 분석결과를 실험대상자들에게 물어봄으로써 언어직관을 비교, 검토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어느 정도 합리적인 객관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의미의 기술은 여러 가지 방법, 가령, 예를 들거나 풀어쓰기를 통해, 그리고 기본 구성성분으로 해체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의미에 대한 연구는 어휘와 문장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분석틀을 제공합니다.
범주화의 고전이론
대상물의 범주를 분류하고 같이 묶는 범주화에 대한 관심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오늘날까지 2천년 이상 동안 철학, 언어학, 심리학 등을 위시하여 모든 학문을 지배해 왔습니다. 사실 학문의 핵심은 개념의 발명이고, 학문의 출발은 개념에 대한 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유구한 전통을 지닌 범주화에 대한 고전이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전 범주화'의 기본 원리는 크게 세 가지 원리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첫째, 고전적 범주는 필요충분 자질의 집합으로 정의됩니다. 이 원리는 범주의 원소, 즉 구성원들이 필요충분 자질의 공통속성을 가진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정사각형'이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까요? 정사각형이라는 개념은 네 가지 자질을 필요로 합니다. 정사각형이 되기 위해서는 네 변이 있어야 하고, 또 이 네 변의 길이가 같아야 합니다. 그리고 네 각이 직각이어야 하고, 모양이 닫혀 있어야 합니다. 어떤 것이 정사각형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조건들이 필요한 자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질들을 모두 갖추고 있을 때 정사각형이라는 것을 확인하는데 충분합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정사각형을 정의하게 되는데, 이것을 '필요충분조건'이라 부릅니다. 필요충분조건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자질을 '정의적 자질(defining feature)'이라 합니다. 정의적 자질이란, 어떤 항목이 특정 범주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반드시 가져야 하는 자질을 말합니다. 고전이론은 필요충분조건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전 범주화에서는 모든 자질이 해당 범주 원소에 존재해야 합니다. 그 때문에 범주의 원소를 결정할 때, 그 밖의 다른 자질은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사각형의 경우 네 가지 자질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그 범주를 이룰 수 없습니다. 정사각형이라는 개념을 정의하고 점검하는 데 있어서, 네 개의 필요충분 자질 외의 다른 자질들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고전적 범주의 자질은 이분법적이며, 분명한 경계를 갖습니다. 이 원리는 '모순율(the law of contradiction)', 즉 모순의 법칙과 '배중률(the law of the excluded middle)', 즉 중도 배제의 법칙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모순율에 따르면, 사물은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어떤 자질을 소유하면서 동시에 소유하지 않을 수 없으며, 어떤 범주의 구성원이면서 동시에 구성원이 아닐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배중률에 따르면, 사물은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 어떤 자질을 소유하거나 소유하지 않아야 하며, 어떤 범주에 속하거나 속하지 않아야 합니다. 따라서 모든 사물은 [+] 또는 [-]라는 두 자질 가운데 하나를 가지게 되며, 서로 경계가 뚜렷이 구분됩니다. 이도 저도 아닌 중간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컨대, 이 세상의 모든 식물을 '나무'와 '풀'이라는 두 범주로 나눈다면, 이 세상의 식물은 '나무'나 '풀' 두 가지 중 어느 하나에 속하게 되는 것이지, 그중의 일부분이 '나무'와 '풀' 두 가지에 다 속한다든지, 아니면 그중의 일부분이 '나무'와 '풀' 가운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범주의 자질은 두 값 중의 한 가지 값, 즉 [+] 또는 [-] 값만을 가질 뿐이며, 분명한 경계를 갖습니다. 고전적 범주 이론에서 의미는 그 자체가 아니라 대조 관계에서 생겨납니다. 여기서는 비교와 대조에 의하지 않고서는 의미를 규정할 방법이 없습니다. 가령, 고전이론에서는 '소년'과 '소녀', '성인남자'와 '성인여자'를 어떻게 정의할까요? 이 네 가지 개념 모두 '인간'이라는 공통자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년'과 '소녀'는 아직 미성년이라는 점에서 공통자질을 지니고 있고, 성인남자와 성인여자는 성인이라는 점에서 자질을 함께 공유합니다. 그리고 소년은 남자라는 점에서 소녀와 구분되고, 성인남자 역시 남자라는 자질에 의해 성인여자와 구분됩니다. 간단히 자질값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고전이론에서는 비교와 대조에 의해 개념의 의미를 알아냅니다. 셋째, 범주의 모든 구성원은 동등한 지위를 가집니다. 이 원리는 하나의 범주 속에 들어 있는 각 구성원들은 동등한 자격과 가치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동일률(the principle of identity)', 즉 동등성의 법칙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동일 범주 내에 여러 개의 유사한 구성원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동일한 자격과 가치를 지닌다고 판단합니다. 따라서 어떤 개체도 다른 개체보다 더 나은 구성원이 되는 것은 아니므로, 범주 구성원들 간에는 서열이나 등급이 없습니다. 예컨대, '새'의 범주에 속하는 '참새', '까치', '닭', '타조' 등의 가치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왜냐하면 범주 구성원 모두 동일한 속성의 집합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실제 현실에서는 100% 동일한 사물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이 모든 다양성을 서로 유사한 영역끼리 하나로 묶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작업을 범주화라 할 수 있는데, 만약 동일률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범주화는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르면서도 비슷한 점이 있기 때문에 '참새', '까치', '닭', '타조'를 '새'라는 범주로 묶을 수 있는 것이지요. 고전이론에서는, 범주화 작업은 언어나 문화, 인종의 차이를 뛰어넘는 하나의 보편적인 작업이라고 봅니다. 모든 인간이 동일한 방법이나 절차로 범주화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는, 인간은 누구나가 동일한 정신적인 능력과 성향을 선험적으로 지니고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들은 저마다 보편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범주화 작업이 일종의 보편적인 작업이라는 말은, 곧 인간의 지식 체계도 보편성이나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고전이론 비판
대략 1970년대부터, 특히 인지심리학계를 중심으로 범주의 본성과 구조에 대한 상당한 논쟁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논쟁이 촉발된 계기는, 그때까지 철옹성과 같이 단단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식의 고전 범주화 이론에 심각하게 도전하는 경험적 증거들이 점점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언어의 원리와 특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지과학에 바탕을 둔 원형이론 개념과 내용 (0) | 2024.07.12 |
---|---|
언어에 대한 고전 범주화 이론에 대한 반기 (0) | 2024.07.12 |
언어기호의 특징 (0) | 2024.07.11 |
기호의 종류와 비교 (0) | 2024.07.11 |
언어 기원의 역사와 학설 (0) | 2024.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