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과학에 바탕을 둔 원형이론 개념과 내용
단어나 개념, 그리고 범주의 의미를 밝히는데 있어 인지과학에 바탕을 둔 원형이론에 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원형이론은 1975년 로쉬(E. Rosch)의 심리언어학 연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로쉬는 범주의 내부구조를 규명하고자 하였습니다. 로쉬에게서 촉발된 원형 연구는 많은 학자들의 수정과 보완을 거쳐 오늘날 '원형의미론(prototype semantics)'이라는 이름 아래 인지언어학의 주요 방법론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원형이론은 인간 능력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인 범주화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으며, 범주화의 본질에 한결 다가선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원형이론을 기반으로 한 인지언어학은 언어, 인간의 마음과 몸, 문화의 상관성을 밝히려는 언어 이론입니다. 원형이론에 기반한 인지문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와 대비되는 고전이론에 기반한 형식문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범주란 과연 일정한 공통적인 속성을 가진 구성원들로 이루어지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둘째로, 범주 자질들 간에 이분법적인 분명한 경계가 있는가 하는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로, 범주를 이루는 원소들, 즉 구성원들의 지위는 동등한가라는 문제입니다. 먼저, 원형과 관련하여 간단한 심리 실험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렇다면 '원형(prototype)'이란 정확히 무엇일까요? 동영상에서 보았듯이, '채소'에 대한 우리 머릿속의 원형은 무엇일까요? '가구'에 대한 원형은 무엇일까요? '연장'에 대한 원형은, '옷'에 대한 원형은 무엇일까요? 또 '새'에 대한 우리 머릿속의 원형은 어떤 것일까요? 피터와 늑대, 원작 프로코피예프, 글 김현애, 그림 신소영. 아침 일찍 일어난 피터는 기지개를 쭉 켜며 정원으로 나갔어요. '안녕. 피터. 뾰롱 뾰로롱.' 작은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피터에게 아침 인사를 했어요. '안녕 작은 새. 네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예쁘구나.' 피터는 칭찬을 하자 작은 새는 신이 나서 뾰롱 뾰로롱 더 열심히 노래를 불렀어요. 그때 오리 한 마리가 뒤뚱뒤뚱 걸어오며 피터에게 인사를 했어요 '안녕 피터. 너희 집 연못에서 헤엄치며 놀아도 되니?' '그럼 그럼.' 오리는 다시 뒤뚱뒤뚱 걸어갔어요. 그러자 작은 새가 피터의 어깨 위로 푸드덕 내려앉으며 한마디 하는 것이었어요. '무슨 새가 저렇게 뚱뚱하담!' 오리는 기분이 상했어요. 그래서 연못에 뛰어들어 보란 듯이 헤엄을 치며 한마디 했어요. '작은 새야, 너는 헤엄 못 치지?' 그러자 작은 새는 연못 위를 날며 약 올리듯 말했어요. '새라면 헤엄을 치는 것보다 날 줄을 알아야지.' 〈피터와 늑대〉는 프로코피예프가 어린이를 위해 작곡한 음악동화인데, 소년 피터가 오리를 잡아먹는 늑대를 잡는다는 이야기에 음악을 붙여 만든 곡입니다. 〈피터와 늑대〉에 등장하는 뚱뚱하고 날지 못하는 '오리'는 새가 아닌가요? 다시 말해, '조류'가 아닌가요? 그리고 〈밤비〉 동영상에서 보았듯이, '새'에 대한 원형을 대강이나마 알려고 하면 새를 구성하는 특징, 즉 새의 '의미적 자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이 새를 새답게 할까요? '새'라는 범주의 자질로는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을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첫째, 새는 날개와 깃털을 가지고 있고, 날 수 있습니다. 둘째, 새는 부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셋째, 새는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습니다. 넷째, 새는 지저귑니다. 등등 대략 이러한 의미 자질들이 새를 특징짓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새들이 이러한 자질들을 다 갖추고 있을까요? 이 자질들 가운데 한 가지 자질이라도 결여되어 있다면 새가 아닌가요? 앞에서 살펴본 고전 범주이론에서는 모든 공통자질을 지니고 있어야 하고, 경계가 분명해야 하며, 구성원들의 지위는 대등해야 합니다. 하지만 원형이론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의 가족유사성에서 보듯이 범주의 구성원들이 모든 자질을 다 공유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 경계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범주의 원소들은 동등한 지위를 갖는 것이 아니라, 계층적이고 위계적인 지위를 갖습니다. 여기서는 가장 좋은 본보기와 그렇지 못한 본보기가 있을 뿐입니다. 원형이란 어떤 범주를 대표할만한 '가장 전형적이고 적절하며, 중심적이고 이상적이며 좋은 보기'를 말합니다. 한 범주의 구성원들은 서로 상이하게 배열될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이상적이고 전형적인 대표자를 원형이라 부릅니다. 로쉬는 10개의 범주 명칭에 대해 해당 범주의 원소들 사이의 정도성을 실험하였습니다. 실험 결과에 나타난 각 범주의 〈원형적인 보기〉와 〈보통의 보기〉, 그리고 〈비원형적인 보기〉를 각각 두 개씩만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몇 가지를 언급해 보면, 표에서 보듯이, '가구'의 원형적 보기로는 의자와 소파를 들 수 있고, 보통의 보기로는 벤치와 식기 선반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원형적 보기로는 선풍기와 전화기가 있습니다. 두 번째 의미범주인 '과일'의 경우, 원형적 보기로는 오렌지와 사과를 들 수 있고, 보통의 보기로는 라임과 탄젤로를, 비원형적 보기로는 피클과 스퀴시를 들 수 있습니다. '채소'의 원형적 보기로는 완두콩과 홍당무를, 보통의 보기로는 양파와 감자를, 비원형적 보기로는 땅콩과 쌀을 들 수 있습니다. '운동'의 경우, 원형적 보기로는 축구와 야구를, 보통의 보기로는 수상스키와 스케이팅을, 비원형적 보기로는 카드놀이와 일광욕을 들 수 있습니다. 그 밖의 다른 의미범주들은 표에서 보는 바와 같습니다. 원형이론이 인지과학에 기여한 바는 범주의 내부구조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는 점입니다. 즉, 범주는 중심과 주변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원형의 출처는 어디일까요? 문화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해당 사회에서 나타나는 빈도와 중요성이 원형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인지언어학자 크루스(Cruse)는 원형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지표로서 최상의 형태를 가리키는 적형성과 전형성, 그리고 질을 들고 있습니다. '적형성(well-formedness)'은 범주의 구성원 가운데 형태와 기능 등에서 적절하고 표준적인 성질을 말합니다. 예컨대, 다른 조건이 같을 때 다리가 하나 또는 셋을 가진 새에 비해, 둘을 가진 새가 적형성의 보기가 됩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규범적인 형태에서 벗어나는 것은 부적형한 것이 됩니다. '전형성(typicality)'은 범주 구성원의 전형적인 성질로서 적형성과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가령, 다리가 두 개인 새는 적형성과 전형성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날 수 있는 능력은 전형성의 기준이지 적형성의 기준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타조는 적형성의 기준은 충족했지만 날 수 없기 때문에 전형성의 기준은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질(quality)'은 어느 것이 더 원형에 가까운지를 따집니다. 가령, '새'의 범주에 속하는 참새, 까치, 제비, 타조, 박쥐, 펭귄들 가운데 어느 것을 가장 전형적인, 그러니까 좋은 보기로 볼 것인가, 그리고 어느 것을 비전형적인, 그러니까 좋지 않은 나쁜 보기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임지룡 교수는 한국의 대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새'라는 범주에 대한 원형 실험을 실시하였습니다. 설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새'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다양한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보기 가운데서 여러분께서 생각하는 '새다움'의 정도에 따라 1에서 7까지 수치로 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새'의 가장 좋은 본보기, 즉 가장 '새'다운 '새'라고 생각되는 것에는 1, '새'의 보기로서 보통이라고 생각되는 것에는 4, '새'의 보기로서 적절하지 못한 것, 즉 '새'답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에는 7로 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2, 3은 1-4의 중간이며, 5, 6은 4-7의 중간 개념입니다. 보기 가운데 그 의미를 모르는 경우는 8로 표시해 주십시오.' 조사결과, 실험대상자들은 같은 새라 하더라도 새의 됨됨이를 다르게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실험 결과를 '새'의 원형적인 보기에서 비원형적인 보기까지의 정도성을 동심원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새의 정도성은 마치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져서 생기는 동심원과 흡사한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참새, 제비, 까치, 비둘기가 '가장 새 다운 새'의 보기로 나타났습니다. 도요새, 방울새, 황새, 접동새는 새의 '보통 보기'에 해당되며, 타조, 박쥐, 펭귄은 새의 '좋지 않은 보기'로 나타났습니다. 원형이론에서 범주의 구성원들은 가족유사성처럼 연쇄적인 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 범주의 경계는 불분명합니다. 그리고 범주의 구성원들은 지위가 같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범주의 구성원들 간에는 가장 전형적인 보기가 있는가 하면, 주변적인 보기도 있어 지위는 서로 비대칭적입니다. 임지룡 교수는 또 10개의 자연범주에 대한 한국인의 원형탐색 실험을 수행하여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결과를 얻었습니다.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국인은 과일이라는 범주의 가장 전형적인 보기로 '사과'를 꼽았습니다. 그리고 꽃의 경우, '장미'를 연상했고, 나무의 경우에는 '소나무'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새의 경우. '참새'를 꼽았고, 옷으로는 '바지'를, 운동으로는 '야구'를, 음식은 '밥'을, 장난감은 '인형'을, 채소는 '배추'를, 탈것으로는 '승용차'를 가장 대표적인 보기로 들었습니다.
범주의 계층성
범주는 하나의 계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범주의 계층은 크게 세 가지 계층, 즉 하위계층, 기본계층, 상위계층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나무의 계층구조를 살펴보면, 기본계층인 나무 위에는 상위계층에 해당하는 생물과 식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나무 아래로는 하위계층에 속하는 참나무과와 그 종류인 신갈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계층구조에서 보듯이, 기본계층은 '나무'입니다. 기본계층은 상위계층과 하위계층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나무' 외에도 다른 범주의 계층구조를 보면, 가령, '개'는 기본계층에 해당하고, '사냥개'는 하위계층에, 동물은 상위계층에 속합니다. 그리고 '의자'는 기본계층에 해당하고, '흔들의자'는 하위계층에, '가구'는 상위계층에 속합니다. 이러한 세 가지 계층 가운데, 인지적으로 볼 때 가장 중요한 계층은 기본계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기본계층에서 사물을 지각하고 개념화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한 사물을 보고 '저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세 가지 계층 가운데서 하나를 고르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가운데에 위치하는 기본계층이 선택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기본계층은 1차적인 층위로서 변별 행위의 층위입니다. 둘째, 기본계층은 가장 이른 시기에 배우고, 사물에 맨 처음 이름을 붙이는 층위입니다. 셋째, 기본계층은 명칭이 짧고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층위입니다. 넷째, 기본계층은 범주의 자연스러운 층위로서 기억하기 쉽습니다. 따라서 기본계층은 상위계층이나 하위계층에 비해 기능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인지적 그리고 언어적인 측면에서도 우월성을 갖습니다. 특히 단어의 형태와 의미를 고려해 볼 때, 기본계층에 해당하는 단어는 발생빈도가 높고, 짧으며, 구조적으로 단순합니다. 상위계층은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여 막연하고 추상적입니다. 하위계층은 범위가 너무 협소하고 디테일하기 때문에 보통 전문가 영역에 속합니다. 이러한 상위계층과 하위계층에 비해, 기본계층은 범위가 적당하여 서로 구별이 가능하게 해 줍니다. 가령, '이것이 무엇이냐'라는 물음에, '사과'라는 답변은 기본계층에 속합니다. '과일'이라는 답은 상위계층에 속하고, 그 범위가 너무 넓습니다. 그에 반해 '홍옥'이나 '부사', '딜리셔스', '스타킹 딜리셔스'라는 답은 그 범위가 좁고 상세합니다. 따라서 대개 기본계층에 있는 '사과'가 가장 이상적인 답변이 됩니다. 그렇다면, 기본계층에 우월성이 주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범주의 유용성에서 비롯됩니다. 기본계층에 속하는 범주는 우리의 사고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지닙니다. 일상생활에서 '과일'에 대해 생각할 경우, 우리는 '사과'나 '귤'과 같은 원형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나무'의 경우, 소나무, 밤나무, 참나무와 같은 원형을 떠올립니다. 이러한 원형적 보기는 기본계층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단어의 의미는 본질적으로 고정되어 있고 명확한 것이라기보다, 모호하고 불명확하며 유동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단어의 이러한 속성을 고려해 볼 때, 원형이론은 의미의 저장과 사용의 신비를 밝혀줍니다. 더 나아가, 원형이론은 언어와 세상사의 지식에 대해 지금까지 고전이론이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하는 매력적인 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원형이론의 유용성과 문제점
그렇다면, 원형이론은 우리가 세상을 파악하고 이해하는데 어떠한 유용성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원형이론의 이점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원형이론의 분석틀은 많은 유용성과 효용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몇 가지만 언급해 보면, 첫째, 원형이론은 우리가 비원형적인 범주의 보기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를 설명하는데 유용합니다. 원형이론은 펭귄이나 박쥐와 같이 새답지 않은 새가 여전히 새로 간주될 수 있는 까닭을 설명해 줍니다. 그리고 인간이 무엇이냐고 할 때,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는 자질로는 대개 직립보행을 하고, 불과 도구를 사용하며, 언어를 사용한다든가, 이성을 가지고 있다든가, 문화를 창조한다든가 하는 것들을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수많은 자질을 전부 공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뱃속의 태아나 어린 아기, 그리고 장애를 입은 사람 등은 자질 가운데 일부만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속성을 다 가진 중심적인 보기가 아니더라도 한두 가지 자질만 가졌거나 가지고 있고, 그리고 앞으로 가질 예정인 주변적인 보기도 '인간'이라는 범주에 해당됩니다. 둘째, 원형이론은 우리가 이른바 '손상된 보기'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를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가령, 날개가 하나뿐이라서 날 수 없는 참새나, 다리가 세 개인 고양이는 비록 원형적인 새나 고양이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새나 고양이가 될 수 있는 이유를 밝혀줍니다. 셋째, 원형이론은 언어습득에서 나타나는 의미의 과대 확장에 대한 이유를 가장 설득력 있게 설명해 줍니다. 어린이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어른과 다르고, 원형에 대한 폭넓은 적용으로 인해 과대 확장을 일으키게 됩니다. 언어습득 초기에 나타나는 이러한 독특한 원형 인식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어른들의 방식으로 옮겨갑니다. 그 밖에도, 원형이론은 동의어와 다의어의 문제, 비유적 표현의 사실성에 대한 점검 문제, 그리고 대상물의 의미변화 등을 효과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이와 같이 원형이론은 인간이 낱말의 의미, 즉 개념적 의미를 어떻게 파악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있어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고전이론과의 비교를 통해서도 살펴보았듯이, 원형이론은 많은 이점과 유용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몇 가지를 언급해 보면, 첫째, 원형을 구성하는 특성의 다양성을 들 수 있습니다. 원형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그리고 원형을 구성하는 특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추정은 가능하지만 확증할 수는 없는 실정입니다. 원형은 가족유사성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실제로 서로 다른 유형의 원형이 존재하므로 모두를 망라하지는 못합니다. 가령, '새'의 원형에서는 모양과 행동에 기반한 '전형성 조건'이 우세합니다. 그에 반해, '색채'의 경우 빨강의 원형은 '중심성 조건'이 우세합니다. 이와 같이 개별 범주마다 원형을 이루는 모습에서 차이가 나타납니다. 둘째, 원형이론은 주로 구체적인 대상물을 기술하는 데에는 대단히 적합한 반면, 추상적 개념 영역의 분석에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가령, 가구, 과일, 새 등과 같은 자연범주는 원형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이지만, 민주주의, 사랑, 이념, 거짓말 등과 같이 대상물이 추상적이거나 실체가 없는 가공적인 것에 대해서는 원형을 추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셋째, 원형의 특성들 간에 우선순위를 매기기가 어렵습니다. 문화권과 맥락에 따라 원형의 불일치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한 문화권 내에서 원형을 선택하는 데에는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지만, 그럼에도 원형이 선택되는 분명한 근거를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빈도수, 모양, 기능 등과 같이 모두가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없습니다. 예컨대, 원형적인 '새'로서 한국에서는 '참새', 미국에서는 '로빈', 인도에서는 '공작'을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질들의 우선순위를 배열하는 방식은 불확실합니다. 깃털과 날개, 부리, 날 수 있는 능력, 둥지, 알을 낳는 것, 지저귀는 소리 등등에서 어느 것이 우선하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정리
의미는 사물이나 사건 등이 가진 공통된 속성을 묶거나 범주화하는 심적 표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념 내지 범주는 우리가 사고하는 능력과 세상을 이해하는 데 기본이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어떻게 사고하는지, 범주의 의미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고전이론과 인지적 원형이론의 비교를 통해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자연적인 범주는 본질적으로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그 범주를 해석하는 기준이 바뀜에 따라, 우리는 아주 상이한 모습으로 대상세계를 파악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고전 범주화의 기준으로 세상을 보느냐, 아니면 원형 범주화의 기준으로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대상세계를 이해하는 데에는 커다란 차이가 발생합니다. 2천년 이상 지속되어 온 고전 범주화 방식의 한계를 자각하고, 그 대안으로 원형 범주화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원형 범주화는 인간 능력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인 범주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으며, 범주화의 본질에 한결 가까이 다가선 것으로 평가됩니다. 범주의 구성원을 판단하거나 연상하는 실험, 언어습득, 언어장애 등에서 나타나는 원형효과는 의미 범주에는 원형적인 보기와 비원형적인 보기, 즉 중심적인 것과 주변적인 것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줍니다. 의미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인간의 인지과정을 밝혀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현재 원형이론은 의미론 연구뿐만 아니라 인지언어학과 인지심리학, 인지과학의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전이론의 대안으로 등장한 원형이론 역시 범주화를 위한 완전무결하고 논리 정연한 이론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고전이론과 인지언어학의 원형이론을 배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서로의 이론적인 장점, 예를 들어 고전적 자질이론에서 제시하는 범주화의 기본 논리구조와 인지언어학의 정밀한 실험 결과들의 장점을 수용할 때, 의미 분석에 있어서 더욱 합리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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