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의 종류와 비교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수많은 기호체계가 있으며, 일상생활 전반에서 기호의 개념이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언어는 기호체계 가운데 가장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에 기호는 곧 언어라는 등식이 맺어집니다. 인간은 자기 이해와 세계 이해를 위한 첫 단계로 언어를 습득합니다. 철학자 폴 리쾨르(Paul Ricœur)는 『시간과 이야기』라는 책에서 기호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습니다. '기호, 상징, 그리고 텍스트에 의해 '매개'되지 않는 자기 이해는 없다. 자기 이해는 궁극적으로 이 매개항들에 적용된 해석과 일치한다.'라고 말입니다. 미국의 기호학자 찰스 퍼스(C. S. Peirce)는 기호와 지시대상 간의 관계에 주목하였습니다. 기호는 달리 표현하면 '표상체'를 가리키고, 지시대상은 '대상체'를 가리킵니다. 퍼스는 이 양자의, 그러니까 기호와 지시대상과의 관계를 기준으로 기호를 세 가지로 분류하였습니다. 도상기호, 지표기호, 상징기호로 말입니다.
도상
도상기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도상기호는 아이콘이라 부릅니다. 도상은 대상체(=지시대상)와 유사한 기호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도상은 해당 대상의 특징을 포착하여 만든 기호라 할 수 있습니다. 도상은 기호와 지시대상의 관계가 서로 비슷한 '유사성(likeness)'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도상은 그것이 상징하는 사물과 비슷해 보이거나 닮은 형태입니다. 예컨대, 꽃을 그린 그림을 보면 실제로는 꽃이 아닙니다. 그냥 백지 위에 물감으로 그려놓은 것이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이 꽃이라는 대상물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으므로 그것을 꽃이라고 부릅니다. 사진이나 지도도 이와 유사합니다. 사진은 실제와 비슷한 형태를 보여줍니다. 가령, 할리우드 배우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의 사진과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Andy Warhol)이 만든 팝아트 작품인〈마릴린 먼로〉를 비교해 보면 다르면서도 비슷합니다. 앤디 워홀의 작품 〈마릴린 먼로〉에서는 얼굴은 분홍색으로, 머리카락은 노란색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마릴린 먼로입니다. 다시 말해 마릴린 먼로의 도상입니다. 지도 역시 실제를 토대로 작성된 것이므로 도상입니다. 또 컴퓨터 바탕화면의 휴지통, 프린터 등과 같은 다양한 아이콘들, 아파트 설계도면 등도 도상기호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우리 주변에는 일상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무수한 도상들이 널려 있습니다. 공중화장실에서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을 나타내는 픽토그램, 공원 산책로에서 보게 되는 자전거 출입금지 표지판, 그리고 비상구 표시, 일기예보 아이콘, 중국의 갑골문자나 이집트 상형문자 히에로글리프(hieroglyph) 등도 모두 도상기호입니다. 이와 같이 도상기호는 외부세계와 실제 사이의 유사성, 즉 닮음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도상은 나타내고자 하는 대상체와 비슷하게 인식될 수 있는 어떤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호와 지시대상 사이에 형태적 유사성이 존재할 때, 그것을 도상기호라고 부릅니다. 도상기호는 누구나 비교적 쉽게 그것이 지시하는 바나 의미하는 바를 바로 알아챌 수 있습니다. 도상은 배우지 않고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외국에 나가 해당 언어를 몰라도 레스토랑이나 화장실 등을 찾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것도 바로 도상기호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표
다음으로, 지표기호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유사성에 기초하는 도상기호와는 달리, 지표기호는 사물을 간접적으로 참조하고 그다음에 일어날 사건의 계속성을 기초로 합니다. 지표는 기호와 지시대상의 관계가 공간적이고 시간적인 '인접성(contiguity)'과 '인과성(causality)'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기호라 할 수 있습니다. 지표기호는 대상체(지시대상)와 실존적인 연결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말은 지시대상과 기호 사이에 인접성과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표기호는 지표의 대상이 사라지면 기호의 속성 자체도 사라지게 됩니다. 온도계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만약 내일 아침 기온이 영하 5도라면, 온도계의 눈금은 영하 5도에 맞추어져 그 온도를 나타냅니다. 그러다가 한낮 기온이 10도로 올라간다면 온도계의 눈금은 10도에 맞춰집니다. 이 경우 외부 기온이 '원인'이라면 온도계의 눈금은 '결과'가 됩니다. 이와 같이 대상체(지시대상)와 표상체(기호) 사이에 인과관계가 성립하는데, 이것이 지표입니다. 우리가 노랗고 빨갛게 물든 단풍잎이나 낙엽을 보고 가을임을 알아채는 것도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지표기호는 도상기호처럼 기호와 지시대상이 어떤 특별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표는 개념적으로 유사한 것이 아니라, 단지 물리적으로 인접해 있거나 어떤 결과의 원인일 뿐입니다. 이러한 예는 우리 주변에 무수히 많습니다. 산에 불이 났을 때 연기가 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연기만 보고도 불이 났음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때 '연기'는 불의 지표가 됩니다. 얼음이 녹으면 물로 변하니까 '물'은 얼음의 지표입니다. 커피에서 커피 향이 나니까 '커피 향'은 커피의 지표가 됩니다. 그리고 땅이 심하게 흔들리고 깨진 유리 파편들은 '지진'의 지표가 됩니다. 몇 가지 예를 더 들어보면, 먹구름을 보고 비를 예상할 수 있고, 재채기나 콧물은 감기의 전조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얼굴의 주름살을 보고 늙어가는 것을, 지문을 보고 도둑을 잡을 수도 있고, 더 나아가 GDP나 GNP의 수치를 보고 한 나라의 경제적 역량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연기 - 불〉, 〈먹구름 - 비〉, 〈콧물 - 감기〉, 〈주름살 - 노화〉, 〈지문 - 도둑〉등은 모두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진 지표기호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지표는 모두 물리적, 생리적 현상을 나타내는 자연지표에 속합니다. 자연지표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과거지표, 현재지표, 미래지표로 세분화할 수 있습니다. 가령, 눈 위의 발자국이나 지문 등은 과거지표에 해당하고, 재채기나 연기 등은 현재지표에 속하며, 먹구름은 미래지표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지표에는 자연지표 외에도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고안해 낸 인공지표도 있습니다. 인공지표는 보통 '신호(signal)'라고 부릅니다. 예컨대, 교통경찰의 수(手)신호나 교통신호등, 도로안내 표지판, 이를테면 좌회전/우회전 표지판, 일방통행이나 진입금지, 추월금지 표지판 등은 보행자나 운전자에게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만든 인공지표입니다. 자연지표가 인과성에 토대를 두고 있는 반면에, 인공지표는 인접성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공지표는 인접성을 어기면 아무런 의미를 담지 못합니다. 신호등이나 표지판은 그것이 필요한 특정 장소에 설치되어 있어야 효력을 가집니다. 해당 장소에 있지 않고 그냥 창고에 쌓여 있다면 신호등과 표지판은 아무런 의미작용을 하지 못합니다. 지표기호는 간단히 다음과 같이 공식화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A라는 일 때문에 B라는 일이 일어난다고 할 때, 이 명제가 참이라면 B는 A의 지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직접 지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다른 것에 의하여 지각할 수 있게 되는 경우,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지각할 수 없는 것을 대신하는 지표가 됩니다. 앞에서 연기와 불의 관계에서 보았듯이,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연기'이고, 지각할 수 없는 것은 '불'이므로 '연기'는 '불'의 지표가 되는 것이지요.
상징
그러면 이제, 기호학자 퍼스가 분류한 기호 가운데 세 번째에 해당하는 상징기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도상기호나 지표기호와는 달리, 상징기호는 임의적이고, 관습적입니다. 상징기호에서는 기호와 의미의 관계가 자의적이라는 것입니다. 임의로 만들어진 기호인 상징은 대상체와 표상체 사이에, 그러니까 지시대상물과 기호 사이에 아무런 유사성이나 인접성도 없고, 어떠한 논리적 연관성도 없습니다. 상징은 문화적 관습이나 규칙, 규약에 의해 만들어진 기호입니다. 상징은 관습성이나 법칙성, 규범성에 의해 대상체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어떤 사회나 공동체에서 그 의미작용을 수용하지 않거나 동의하지 않는다면, 상징은 기호로서 아무런 기능도 수행하지 못합니다. 상징기호는 학습을 통해 의미를 습득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상징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언어를 들 수 있습니다. 가령, '나무(木)'라는 대상은 한국어에서는 [나무]라고 표현하고, 영어에서는 tree[tri:]로, 그리고 일본어에서는 木[き]라고 표현합니다. 따라서 '나무(木)'라는 지시대상을 가리키는 의미, 즉 '나무'라는 뜻과 [namu], [tri:], [ki]라는 소리 기호 간에는 아무런 인과관계나 유사관계를 찾을 수 없습니다. 상징에 대한 예 역시 우리 주변에 무수히 존재합니다. 아라비아 숫자 9는 '아홉'이라는 개념과 아무런 연관성도 없습니다. 단지 9라는 모양은 아홉을 의미하므로 상징입니다. 그리고 1+1=2라는 것도 학습을 통해 알 수 있으므로 상징입니다. 시위를 벌일 때 마스크에 그려진 'X'라는 표시는 대개 어떠한 것에 대한 거부, 즉 'No'의 의미를 지닙니다. 'X'와 'No' 사이에는 아무런 형태적인 유사성을 찾을 수 없습니다. X는 단지 학습에 의해 거부의 의미로 받아들여지므로 상징입니다. 또 빨간색 바탕에 흰색 글씨체로 '코카콜라'라고 쓰여 있는 로고는 코카콜라 회사에 대한 상징이며, BMW 자동차 앞에 붙어 있는 마크는 BMW 회사에 대한 상징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신호등도 상징에 대한 좋은 예입니다. 신호등은 빨강, 노랑, 초록색으로 각각 멈춤, 주의, 진행을 표시합니다. 또 도로에 노란색과 검정색 선으로 이루어진 과속방지턱 역시 '속도를 줄이시오'라는 의미를 담은 상징입니다. 그리고 부적이나 노란 리본도 일종의 상징기호입니다. 부적은 어떤 액운을 막아주는 상징물이고, 노란 리본을 다는 것은 누군가 돌아와 주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상징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이 기호들 간에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습니다. 단지 사회에서 그렇게 약속을 한 것일 뿐입니다. 이러한 약속은 관습에 의해 지속됩니다.
비교 정리
이상에서 다룬 세 가지 기호, 즉 도상기호, 지표기호, 상징기호의 특징을 표와 그림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표에서 보듯이, 도상기호는 유사성에 바탕을 두고 있고, 지표기호는 인접성과 인과성에, 그리고 상징기호는 자의성과 규약, 관습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도상은 사진이나 지도에서처럼 보면 바로 알 수 있어 학습이 필요 없습니다. 지표는 연기와 불, 먹구름과 비의 관계에서 보듯이 추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상징은 언어나 수학공식처럼 반드시 학습을 해야 알 수 있습니다. 또 그림에서 보듯이, 도상기호는 모양이나 형태에 근거합니다. 지표기호는 상호 영향관계 또는 인과관계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징기호는 어떤 사회나 공동체의 약속이나 관습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기호의 세 가지 유형인 도상기호, 지표기호, 상징기호가 언제나 엄밀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는 이들 세 가지가 뒤섞여서 나타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한 기호 속에 도상과 지표가 함께 나타나기도 하고, 지표가 상징과 섞이기도 합니다. 또 상징이 도상과 서로 어우러지기도 하고, 세 가지가 모두 혼재되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예컨대, 다음 이미지 기호를 한번 보겠습니다. 첫 번째 것은 고속도로 휴게소 표지판입니다. 이것이 고속도로 휴게소 가까이에 설치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지표'이지만, 나이프와 포크, 주유소 그림은 '도상'입니다. 여기서는 지표와 도상이 섞여 있습니다. 두 번째 것은 언어를 사물이나 그림처럼 배열한 캘리그램(calligram)입니다. '언어로 된 그림'이라 할 수 있지요. 이 경우에는 상징기호인 언어가 도상적인 변신을 한 것입니다. 〈All, es ist verganglich〉라는 독일어 문장을 반복하여 나비 그림을 그렸습니다 〈All, es ist verganglich〉라는 말은 '모든 것은 순간적이며, 덧없고 무상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상징과 도상이 서로 만나고 있습니다. 세 번째 것은 금연 광고인데, 여기에는 도상과 지표, 상징이 모두 뒤섞여 있습니다. 손으로 담배를 쥐고 있는 그림자가 총처럼 보이는 것은 '도상'입니다. 담배가 건강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림자인 총으로 표현한 것은 '지표'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담배가 총만큼이나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상징'이라 하겠습니다. 언어와 관련지어보면, 도상은 언어로 다듬어지기 이전의 단계입니다. 감각과 정서, 그리고 가시적, 비가시적, 청각적인 이미지들이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보통 도상은 언어체계라는 지표를 거친 다음, 언어공동체의 관습이 되어 상징기호로 정착합니다. 이처럼 도상-지표-상징기호로 나아가는 과정을 '지표화'라 합니다. 반대로 기존의 상징기호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상의 단계에서 다시 출발하는 과정을 '도상화' 또는 '이미지화'라 할 수 있습니다. 학문의 언어는 지표화의 언어라 할 수 있고, 그에 반해 시(詩)를 비롯한 예술의 언어는 이미지화의 언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수 싸이(Psy)의 〈강남스타일〉은 특별히 한국적인 상징이나 슬로건을 내세우지 않고도 풍자나 해학을 기반으로 폭발적인 반응과 공감을 얻어내었습니다. 새로운 이미지는 기존의 의미 체계에서 벗어나 또 다른 의미를 생성합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새로운 이미지를 형상화해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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