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기원의 역사와 학설
언어의 뿌리의 역사, 즉 언어기원론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어가 인간의 독점물인 만큼 언어의 기원에 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오랜 옛날부터 인간은 언어의 기원을 알아낼 수 있다면 인간 자신의 기원을 밝혀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어기원론의 역사는 인간의 학문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습니다. 언어기원론의 역사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고대의 신화와 중세의 신학적 교리의 시대이고, 둘째는 근대의 철학적 사변의 시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는 현대의 과학적 탐구의 시대, 이렇게 세 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신화와 신학적 교리의 시대
먼저, 고대의 신화와 중세의 신학적 교리의 시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신화나 종교 경전에는 자주 언어의 기원에 관한 설명이나 이야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이집트 신화를 보면 토트(Thoth) 신이 언어를 창조한 것으로 되어 있고, 인도의 신화에서는 창조주인 브라흐마(Brahma) 신의 부인 사라스바티(Sarasvati) 여신이 힌디어를 만들어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 바빌로니아 신화에서는 나부(Nabu) 신이 사람에게 말을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에서도 직접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곰이 신과 직접 말을 주고받으면서 사람으로 바뀌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와 같이 언어가 신의 선물이라는 생각, 즉 '신수설'은 옛날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믿음이자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어의 탄생이 베일에 싸여 있는 만큼 신에게 실마리를 돌리는 것은 한편으로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언어를 신으로부터 받았다는 신수설의 근거는 신화나 전설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 경전에서도 이런 점을 확인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성경입니다. 언어 신수설은 하나의 우화나 전설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의 사실로 믿어지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대략 세 가지의 언어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첫 번째 것은 이 세상의 만물이 이름을 갖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 이야기입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의 만물을 창조한 다음, 첫 인간인 아담에게 만물에 대해 이름을 지을 권리, 즉 '명명권'을 줍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2장 19 ~ 20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이로 미루어볼 때, 하느님이 최초의 인간을 창조할 때 언어도 함께 선물로 주었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것은 〈창세기 11장 1 ~ 9절〉에 나오는 바벨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이 언어와 함께 창조된 뒤 인간의 언어는 원래 하나였는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해진 인간의 모습을 보고 하느님이 언어를 갈라놓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해당 내용을 잠깐 인용해 보면, 온 땅의 구음(口音)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東方)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瀝靑)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城)과 대(臺)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混雜)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여기에는 언어의 다양성에 대한 일종의 비유적 설명으로서 언어의 기원 문제뿐만 아니라 인간성의 실체나 신과 인간의 관계 등이 담겨 있습니다. 세 번째 것은 신약성경〈요한복음 1장 1절〉에 나오는 구절로서 하나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종교적 교리이며 단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언어를 창조주와 동일시하고 언어와 진리를 동일시하는 이런 사상은 신수설의 극치이고 기독교적 언어관을 반영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언어란 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이며, 진리를 표현하는 수단, 그러니까 '진리의 표현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언어기원설
다음으로, 언어기원론의 두 번째 단계인 근대의 철학적 사변의 시대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기나긴 중세의 터널을 지나 근대에 들어서면서 서구 사회는 계몽적 사조와 논리적 사고방식에 힘입어 언어의 기원 문제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어의 기원의 문제는 당연히 당시 철학자들을 괴롭혔고, 여기에 대한 많은 가설이 제기되었습니다. 큰 흐름은 언어를 신으로부터 받았다는 신수설을 거부하는 쪽으로 나아갔습니다. 언어란 인간을 위해 신이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필요성에 의해 만들었다는 '인위설' 내지 '발명설'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대에 등장한 대표적인 언어기원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는 의성설입니다. 의성설은 언어란 사람들이 자신이 자주 보는 사물이나 동물의 소리를 흉내 내어 대상을 표현한 데에서 언어가 시작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예를 들어 개가 멍멍 하는 소리를 듣고 개를 '멍멍이'라 부르고, 뻐꾸기가 뻐꾹뻐꾹 하는 소리를 듣고 '뻐꾸기'라 부른 데서 언어가 기원했다는 것입니다.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 휘트니 등이 이러한 견해를 대표합니다. 오늘날 이 같은 의성설은 약간 조롱을 섞어 'bow-wow theory', 우리말로는 '멍멍설'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언어기원에 관한 두 번째 가설로는 유추설을 들 수 있습니다. 앞에서 본 의성설이 단순히 대상의 소리를 흉내 내는 데서 시작했다는 주장이라면, 유추설은 사람들이 자연의 대상들의 속성을 관찰하여 그것에 어울리는 소리를 만들어 씀으로써 언어가 생겨나게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예컨대 종을 치면 '땡'하는 소리가 나고, 손뼉을 치면 '짝'하는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이 사물 고유의 소리를 인간이 지각하는 대로 표현하려는 데에서 언어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으로는 비교언어학자 막스 뮐러를 들 수 있습니다. 또 고대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명명설' 역시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오늘날 유추설을 익살스럽게 표현하여 'ding-dong theory', 즉 '땡땡설'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세 번째는 감정 표출설입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온갖 감정을 표출하게 됩니다. 기쁨이나 슬픔, 괴로움과 분노, 사랑과 미움 등과 같은 감정을 느낄 때 사람들은 저절로 또는 인위적으로 어떤 소리를 토해내게 되는데, 이때 튀어나오는 소리에서 언어가 생겨나게 되었다는 견해입니다. 이를테면 놀라움을 나타낼 때 나오는 '아!','어!' 와 같은 소리나, 아쉬움을 느낄 때 나오는 '저런!', '쯧쯧!' 등과 같이 인간의 감정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오는 소리가 언어의 모태가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감정 표출설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계몽사상가 루소를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자들도 이러한 주장을 했습니다. 오늘날 감정 표출설을 약간 조롱을 섞어 'pooh-pooh theory', 우리말로는 '쯧쯧설'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네 번째는 가창설입니다. 가창설은 원시인들이 산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나 귀신을 내쫓는 의식을 치를 때 부르는 노래와 영창에서 언어가 비롯되었다는 설입니다. 가창설은 언어의 발생을 인류의 가장 원초적인 문화 양식이라 할 수 있는 노래와 춤에서 그 기원을 찾은 것입니다. 제사를 지낸다든지, 사랑을 표현한다든지 등과 같은 정서적 충동으로 인해 노래가 생겨나게 되었고, 그것이 점차 정교해지면서 언어로 발전했다는 것입니다. 진화론자 찰스 다윈, 철학자 스펜서, 언어학자 예스페르센 등이 이러한 견해를 보였습니다. 가창설을 익살스럽게 표현하여 'sing-song theory', 우리말로는 '아아설'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다섯 번째 언어의 기원에 대한 가설로는 노동설을 들 수 있습니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삶에 필요한 수단들을 얻게 됩니다. 공동체를 유지하고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함께 일하고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는 '으싸으싸', '어기영차', '으랏차차' 따위의 소리를 내게 되는데, 이와 같이 함께 하는 노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언어가 생겨났다고 보는 주장입니다. 언어철학자 누아레, 러시아의 신경심리학자 루리아 등이 이러한 견해를 대표합니다. 노동설을 재미있게 'grunt theory', '끙끙설'이라 부르기도 하고, 'Yo-he-ho theory', 즉 '어기영차설'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여섯 번째는 몸짓설입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사람들이 처음으로 무엇인가 의사를 표시하고자 할 때 몸놀림이 가장 먼저 일어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최초로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고 싶을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몸짓이라고 보고, 이것을 언어의 시발점으로 본 것입니다. 이러한 견해를 대표하는 사람으로는 관념론 철학자 콩디야크, 계몽주의 사상가 디드로, 심리학자 분트(Wundt) 등이 있습니다. 다음, 일곱 번째는 의지설입니다. 의지설은 사물의 소리를 모방하거나 몸짓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하면서 언어가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의지를 가지고 의사소통 방법을 궁리하여 순전히 창조적으로 추상적인 언어를 만들어냈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대표하는 사람으로는 19세기 철학자 마티(Marty)를 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동일언어 기원설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동일언어 기원설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철학자 헤르더입니다. 그의 이론의 핵심은 인간의 언어 능력은 선천적이라는 것입니다. 헤르더는 자신의 이론에서 언어와 사고는 인류가 태어날 때 이미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지 신의 선물이나 인간의 발명설이 아니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헤르더는 인간의 언어와 동물의 울음소리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합리주의 철학자 데카르트의 견해를 받아들였습니다. 헤르더는 모든 언어는 단일한 언어에서 파생되어 지금의 다양한 언어가 되었다는 '동일언어 기원설'을 주장하였는데, 이 이론의 핵심은 '보편성'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구상에는 다양한 언어들이 있지만 이들 언어 간에는 보편적인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모든 언어에는 주어, 목적어, 동사가 있고, 문법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같은 부모에게서 언어를 물려받았고, 모든 언어는 하나의 언어로부터 내려왔다는 것이 헤르더의 주장입니다. 자,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언어의 기원에 관한 문제는 오랜 세월 동안 신의 선물설과 인간의 발명설 사이를 오갔을 뿐 어느 누구도 뚜렷한 방향이나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미궁에 빠진 언어의 기원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하는 것은 학문적으로 무모하고 공허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1886년 프랑스 파리 언어학회는 다음과 같은 회칙을 제정하였습니다. '본 학회는 '언어의 기원'에 관한 논문을 더 이상 접수하지 않는다.'라고 말입니다.
과학적 탐구의 시대
다음으로는, 언어기원론의 역사에서 세 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현대의 과학적 탐구의 시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학회에 의해 공식적인 금기 조치가 해제되면서 언어의 기원 문제에 대한 연구가 다시 활기를 띄게 되었습니다. 근대의 철학적 사변의 시대와는 달리 과학적 탐구의 시대에서는 새롭게 발견된 생물학적, 언어학적, 심리학적 사실들을 토대로 학문의 과학화가 이루어졌고, 연구의 전선이 다변화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오늘날 언어기원에 대한 연구는 거의 '진화설'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진화설은 언어가 신의 선물도 아니고 인간의 발명품도 아니며 인류 진화의 산물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 신수설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이 신에 의해 창조되면서 애초부터 언어를 함께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발명설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상당한 지혜를 가지고 있던 인간이 스스로의 창의적 노력을 통해 어느 날 갑자기 언어를 만들어낸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학적 사실에 바탕을 둔 진화설에서는 인간의 신체와 정신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언어 역시 자연 발생적으로 출현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언어의 기원을 밝히려는 노력은 1970년대 중후반부터 현재까지 기존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다양한 학문분과, 이를테면 생리학, 고고 인류학, 언어학, 심리학, 뇌과학 등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느 특정한 한 학문이 아니라 상호 협업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 누구나 공감하고 있는 것이지요. 오늘날에는 다양한 학문분과의 발전과 함께 언어의 기원을 동물 세계의 통신 방법과 원시인의 언어에서 찾았던 종래의 입장에서 벗어나 학제 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모색해 보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리버만 교수를 들 수 있습니다. 새로운 연구방법은 진화론 중심의 통합적 방법입니다. 이것은 언어학적 접근법과 진화론적 접근법, 유전학적 접근법 등이 서로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거의 독립적으로 진행되었던 종전의 방법과는 다릅니다. 여기서는 진화론적 접근법이 중심이 되고 나머지는 보조적 접근법이 되는 방식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근대의 철학적 사변의 시대와 다른 점은 최근의 신 학설들은 모두 새로 발견된 생물학적 내지 언어학적 사실이나 심리학적, 신경학적 사실들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언어기원의 문제처럼 아직까지 누구도 과연 정답이 있는지조차도 잘 모르는 문제를 다룸에 있어 오직 과학적 방법만을 사용한다는 것 역시 분명 일종의 모험적 도전임에 틀림없습니다. 솔직히 언어의 기원의 문제를 명백히 밝혀내는 일은 불가능에 대한 도전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리버만 교수의 생리학적 진화설을 중심으로 한 최근까지의 과학적 연구 성과를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언어의 본질은 이원성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언어의 두 자질이라 할 수 있는 소리(음성)와 뜻(의미)이 독립된 체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언어의 발생은 두뇌의 진화(발달)와 발성기관의 진화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현재의 대체적인 시각입니다. 두뇌의 발달은 의미체계의 습득을 가능하게 하고, 발성기관의 진화는 음성체계의 실현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러한 두뇌의 발달과 발성기관의 진화는 거의 동시에 병행해서 일어났을 것이라고 봅니다.
두뇌의 발달
먼저 두뇌의 발달에 관해 살펴보면, 지능과 뇌의 크기는 비례 관계에 있습니다. 약 200만 년 전 원숭이 상태의 뇌의 용량은 440~450㎤ 정도였던 것이 5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 때에는 900㎤로 용량이 늘었고, 4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때에 와서는 처음의 세 배가 넘는 1,400㎤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과학적 탐구의 시대에는 이렇게 두뇌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언어도 생겨났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인간의 행동을 지능을 토대로 분류하면 '단선적(linear) 행위'와 '추적적(tracking) 행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어떤 목표를 향해서 일직선으로 걷는 것은 단선적 행위에 해당하고, 원이나 정삼각형을 그리며 걷는 것은 추적적 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 걸을 때는 지금까지 얼마나 어떻게 걸어왔는가 하는 것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앞만 보고 똑바로 걸으면 됩니다. 하지만 걸어서 원이나 정삼각형을 그려야 한다면 지금까지 걸어온 각도와 거리 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즉 추적하면서 걷지 않으면 원이나 정삼각형을 그려낼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저기 나무까지 걸어가세요.'라는 문장은 단선적 행위를 나타내지만, '영희는 사과를 좋아하고 철수는 배를 좋아한다.'라는 문장은 추적적 행위를 나타냅니다. 추적적 행위에서는 단순한 반복이나 기계적 사고가 아닌 전후 관계를 파악하고 기억하면서 행동해야 합니다. 처음에 사람의 지능은 두 지점 사이에 선을 그어서 직선을 만들거나 즉흥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표현하는 과정의 단선적 단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이 단계를 넘어 옛날에 알았던 것을 돌이켜 반추한다거나 한 지점을 출발하여 원을 그리며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사고력의 상태인 추적적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뇌 발달의 단적인 증거로서 영장류는 단선적 사고가 아니라 추적적 사고를 한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성과 사회적 관계는 영장류의 지능 발달이 빚어낸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동물들의 교미에는 사회적, 도덕적 구속력이 없으므로 단선적 사고만으로도 모든 행위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근친상간을 금지하므로 누가 근친인지 추적해서 그것을 피해야 하는 추적적 사고와 행위가 필요합니다. 또 다른 예로 석기를 만들었던 인류 역시 추적적 사고를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단선식으로는 손도끼나 활촉을 뾰족하게 만드는 것이 힘들고 거의 완제품을 찾아다녀야 해서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약 50만 년 전 '르발루아(Levallois) 기법'을 사용하고부터는 처음부터 한자리에서 원하는 석기를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르발루아 기법이라 불리는 석기 제조법은 주재료가 되는 돌덩어리, 즉 모재를 구해다가 받침돌 역할을 하는 모룻돌 위에 얹어 놓고 돌망치로 치거나 힘으로 눌러서 돌껍질을 벗겨 냅니다. 이때 벗겨진 돌껍질이 바로 창촉이고 부싯돌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떤 크기의 돌조각을 어떤 모양으로 쪼아낼까 하는 것을 미리 생각해 놓고 돌을 쪼아야 합니다. 좀 더 편리한 도구를 만들게 된 이러한 사건은 인간으로 하여금 추적적 사고를 하도록 촉진했고, 결국 지능의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언어는 이러한 단선적 단계에서 추적적 단계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언어를 구사하려면 순간적으로(즉흥적으로) 어떤 낱말을 아무렇게나 내뱉는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판단과 실천적 지능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단편적 어휘의 사용을 넘어 문장을 만들고 나아가 더욱 복잡한 문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기존에 알고 있던 낱말이나 문법 규칙들을 기억하고 있다가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지능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언어는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어서 문장이 이루어지는 단선적 현상이 아니라 그 밑바탕에는 지나간 것, 즉 생략된 것을 기억할 수 있는 두뇌력이 필요한 추적적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 우리는 두뇌의 용적 증가와 지능 발달의 함수 관계와 더불어 복잡해진 사회 작용과 도구의 발달 등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뇌의 용량이 동물의 뇌보다 크다고 해서 우리가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가령, 코끼리와 고래의 뇌는 인간보다 훨씬 큽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진정한 언어가 없습니다. 두뇌의 발달을 이야기하려면 양적 확대보다 더 중요한 질적 차이를 주목해야 합니다. 두뇌의 발달은 언어의 발생이라는 질적 혁신을 통해 더욱 촉진된 것입니다. 따라서 두뇌의 발달과 언어의 발생은 상호 간에 질적 발전을 촉진하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발성기관의 진화
지금까지 살펴본 두뇌의 진화가 언어의 발생에 필요한 필요조건이었다 하더라도 충분조건은 되지 못합니다. 언어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두뇌의 진화와 병행해서 발성기관의 진화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과 동물의 발성기관은 어떻게 다를까요? 그리고 인간의 발성기관은 어떠한 진화의 과정을 밟았을까요? 인간의 발성기관과 오랑우탄이나 침팬지, 원숭이와 같은 원속동물의 발성기관을 비교해 보면, 가장 큰 차이는 성문의 위치를 들 수 있습니다. 인간의 경우 성문이 목 가운데, 그러니까 척추의 제5경부와 제6경부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반해서, 원속동물의 경우 목 위, 즉 척추의 제4경부 윗부분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목뼈로 계산했을 때 인간의 성대는 목뼈에서 서너 번째 밑에 위치해 있습니다. 하지만 침팬지는 제일 윗부분의 목뼈 부근에 성대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뇌의 발달(진화)과 더불어 성문의 하강이 언어발생에 필요한 또 하나의 진화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성대가 입안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다양한 발음을 하기 위한 것과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발성기관의 모습을 살펴보면, 인간의 경우에는 구강과 인강이 합해져서 ㄱ자 모양의 이관형 기관(two-tube tract), 즉 두 개의 튜브 모양인 반면, 침팬지와 같은 원속동물은 인강이 없기 때문에 구강 하나로만 이루어진 일관형 기관(one-tube tract), 즉 한 개의 튜브 모양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발성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가령, 파이프 오르간을 연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파이프 오르간처럼 공명관이 크고 많을수록 상대적으로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인간은 구강과 인강의 크기를 변화시키면서 다양한 발성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관형 기관과 이관형 기관은 단순한 물리적 차이가 아니라 인간이 언어의 발성 체계를 갖게 만든 질적인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추적적 행위를 가능하게 해 준 두뇌의 진화, 즉 두개(頭蓋) 용적의 증대와 다양한 말소리의 발성을 가능하게 해 준 성문의 하강, 즉 발성기관의 진화의 교차점에서 언어가 발생하였음을 추리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인류가 언어의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은 약 5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 시기에 두뇌 용적이 약 1,000㎤에 달하고 성문이 하강하였을 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언어는 소리와 뜻이 연결되어야만 이루어집니다. 소리는 성문이 내고 뜻은 두뇌가 해석합니다. 추적적 사고와 함께 두뇌의 발달(진화)과 다양한 말소리의 발성을 가능하게 해 준 발성기관의 진화로 말미암아 인간의 언어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리
고대부터 사람들은'언어란 어떻게 생겨났을까', '언어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하는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언어의 기원을 '신의 선물' 로 본다든지, '인간의 발명품'으로 보는 시각은 종교와 과학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언어를 종교적인 관점에서, 즉 신의 선물이라 주장하는 기록들은 주로 언어신수설과 종교적 언어관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여러 신화들, 가령 이집트의 토트 신, 인도의 사라스바티 여신, 바빌로니아의 나부 신, 창세기의 바벨탑 이야기 등이 그것입니다. 언어의 기원을 과학적 산물로 보는, 즉 인간의 발명품이라 주장하는 기록들을 들여다보면, 여기서는 계몽주의 철학자들, 아리스토텔레스와 루소, 그리고 19세기 진화론 등에 힘입고 있습니다. 오늘날 현재 언어의 기원 문제는 진화론에 토대를 두면서 생리학, 비교동물학, 유전학, 신경과학, 고고인류학, 언어학, 심리학, 컴퓨터공학 등의 성과에 기대어 계속 비밀의 열쇠를 풀어나가고 있는 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어의 근본적 특징은 '음성(소리)'과 '의미(뜻)'로 이루어진 이원적 체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음성과 의미는 언어의 양대 축입니다. 특히 생리학적, 고고인류학적 연구 성과물에 의하면, 인간의 두뇌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로 넘어가면서 두 개(頭蓋) 용적의 증대와 르발루아 기법에 기초해 진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약 30∼5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에서 호모 사피엔스로 이행하는 시기에 성문이 하강하면서 발성기관 또한 진화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21세기에 언어의 기원과 인간의 언어습득 능력을 밝혀내는 작업은 인간의 인지 구조를 밝혀내는 일과 뇌의 신비를 벗겨 내는 작업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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