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곡어법의 개념과 비교
금기어와 짝을 이루고 있는 완곡어법에 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완곡어법은 영어로 〈euphemism〉이라 하는데, 이 말은 '좋게 말하기'라는 뜻입니다. 원래의 직설적인 표현은 부정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어 청자에게 불쾌감이나 거부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중립적이거나 긍정적인 태도가 가미된 표현으로 대체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말에서 '완곡(婉曲)'이라는 말의 낱말가족에는 '완곡하다'는 동사를 비롯해 '완곡성', '완곡어법', '완곡어', '완곡 표현' 등과 같은 말들이 있습니다. '완곡하다'는 말은, 말하는 투가 듣는 사람의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모나지 않고 부드럽게 돌려서 말한다는 뜻입니다. 또 '완곡성'이라는 말에는 '부드러움, 간접성, 우회성, 모호성, 함축성' 등과 같이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완곡어법'이란 어떤 사물을 표현할 때 의도적으로 직설적인 표현을 피해, 그 사물과 동의관계에 있는 단어나 문장으로 에둘러 표현하는 수사법을 말합니다. '완곡어'는 감정이 상하지 않는 말, 또는 본래의 뜻과 같거나 비슷한 말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완곡표현(circumlocution)'이란 원래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직설적인 화법을 피해 간접적이고 완곡하게 말하는 화법상의 원리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완곡 표현은 넓은 의미에서 완곡어와 완곡어법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사용됩니다. 언어적인 대체수단에 속하는 완곡어법은 터부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완곡어와 완곡 표현은 유쾌하지 못한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리고 좋지 않은 일, 가령 죽음이나 실직, 범죄 등과 같은 주제들을 중화시켜 줍니다. 완곡어법과 완곡 표현을 비롯해 다양한 우회적 표현이나 비유적 표현을 사용할지라도, 의사소통 참여자들은 모두 언제나 그 의미적 함축성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완곡어법은 터부를 깨트릴 때 일어날 수 있는 수치심과 불쾌감을 막아주고, 노골적인 표현에서 야기될 수 있는 거북스런 상황을 피하게 해줍니다. 지난 2011년에 결혼한 영국 왕실의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미들턴이 한때 결별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양가의 상견례 때 미들턴의 어머니가 화장실을 완곡어인 'bathroom'하지 않고, 'toilet'이라고 지칭한 결례 때문이라고 합니다. 미들턴의 어머니가 화장실을 지칭할 때, 'shithouse', 즉 '변소'라고 한 것도 아니고 통용어 수준인 'toilet'으로 지칭했는데도 불구하고, 특정 상황이나 사회적 계층에 따라서는 금기어로 간주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완곡어법을 사용하는 것은 의사소통에 참여한 사람들을 터부 위배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거북스러운 감정으로부터 보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완곡어법은 언어적 은폐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완곡어법은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서든, 예의나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든,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상황에 따라 '무기'가 될 수 있는 직설적인 표현을 대체하는 언어적 '방패' 역할을 수행합니다.
금기어와 완곡어의 공통점과 차이점
금기어와 완곡어는 어떠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차이점은 무엇인지를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금기어와 완곡어의 공통 기반을 보겠습니다. 완곡어는 금기어를 대신합니다. 따라서 금기어는 완곡어의 생성을 촉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금기어와 완곡어는 사물과 현상을 표현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공통의 대응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금기어와 완곡어는 질병이나 죽음, 재난 등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이나 개념과 대응됩니다. 둘째, 금기어와 완곡어는 불결하거나 수치스럽게 느껴지는 사물이나 현상과 대응됩니다. 셋째, 금기어와 완곡어는 봉건적 미신과 대응됩니다. 넷째, 금기어와 완곡어는 봉건사회의 신분 특권이나 관습과 대응관계가 있습니다. 다섯째, 금기어와 완곡어는 신앙, 종교, 신성한 사물과 대응관계가 있습니다. 여섯째, 금기어와 완곡어는 순탄치 않은 인생 문제나 다양한 사회 문제와 대응됩니다. 다음으로, 금기어와 완곡어에는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지를 보겠습니다. 첫째, 양자 간에 나타나는 특징의 차이를 들 수 있습니다. 금기어는 말하기를 꺼려하거나, 감히 말하지 못하거나, 말해서도 안 되는 어휘입니다. 그래서 금기어는 일부 사람들이 특수한 상황이나 장소에서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피동적이며 소극적인 언어행위입니다. 그에 반해, 완곡어의 경우 사회문화와 심리 등의 요소들을 고려하여 적절한 어휘를 만들어 사용합니다. 따라서 완곡어는 직설적인 금기어를 대체하는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언어행위입니다. 둘째, 양자는 사용목적에서 차이가 납니다. 금기어는 솔직하고 노골적으로 말하거나 심지어 권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반해, 완곡어는 기분을 좋게 하거나 해학적인 재미를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양자는 표현효과에서 차이가 납니다. 금기어는 그 대상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전통사회에서 금기어는 특정한 말의 사용을 기피하거나 꺼려하는 소극적인 작용을 하였지만, 오늘날에는 특수한 표현효과를 낳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상대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하거나, 상대에게 불만을 털어놓거나, 신분을 과시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합니다. 또한 다른 나라 사람들을 상대로 특정한 금기어를 공개적으로 사용할 경우, 가령 일본사람을 '쪽바리'라 한다든가, 중국사람을 '때놈'이라 칭할 경우, 국가 간의 충돌이 야기될 수도 있습니다. 그에 반해, 완곡어는 금기어를 대체하거나 정치, 경제, 군사, 무역 등과 같이 다양한 영역에서 전략적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완곡어는 질병, 죽음, 몸무게, 나이, 사생활, 장애, 가난, 신분, 직업 등과 같이 민감하고 자극적인 화제를 다룰 때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넷째, 양자는 대응되는 유형과 수에서 차이가 납니다. 금기는 인간의 삶 전반에 걸쳐 나타납니다. 하지만 모든 개별 영역에서 그에 상응하는 완곡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완곡 표현 가운데 해학적이고 유머러스한 표현의 경우, 그에 대응하는 금기어는 없습니다. 이와 같이 금기어와 완곡어가 반드시 1:1의 대응관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금기어는 있지만, 그에 대응하는 완곡어가 없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완곡어는 있지만 그에 대응하는 금기어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섯째, 양자는 언어변화의 측면에서 볼 때 차이가 납니다. 완곡어는 사회의 발전에 따라 금기어보다 유동적이고 가변성이 큽니다. 완곡어가 일정한 기간 사용되다가 지칭하는 사물과의 거리감이 없어져 완곡성이 사라질 경우, 그것은 다시 금기어가 됩니다. 그러면 또다시 새로운 완곡어를 만들어냅니다. 따라서 금기가 존재하는 한, 완곡어는 부단히 발전하고 새롭게 탄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완곡어의 실현형태와 기능
다음에서는 완곡어가 어떠한 언어적 대체수단을 통해 실현되는지, 그리고 완곡어는 어떠한 기능을 수행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언어적 대체수단은 터부를 해소하거나 우회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그리하여 터부시되는 대상이나 행위, 주제, 사태 등에 대해 사회적인 규범을 침해하지 않고서도 말할 수 있게 합니다. 대체수단은 특히 특정한 의사소통 상황에서 터부시된 영역에 대해 말할 수 있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있기 때문에 아주 중요합니다. 언어적 대체수단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금기어의 철자나 소리를 약간 바꾸거나 외래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반어적 표현이나 전문 어휘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또 대명사를 사용하여 지칭하기도 하고, 생략하거나 모호하게 표현하기도 하며, 의미를 전이시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반화시키거나 풀어쓰기를 하고,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를테면, '변소' 대신 외래어를 사용하여 'W.C'나 'Toilet'이라 합니다. 말하기 힘든 금기어를 대명사를 사용하여 '그것/거시기'라 하고, 거북한 느낌을 주는 '항문외과'는 받침에 이응이 아닌 기역을 써서 '학문외과'라고 표기하기도 합니다. 또 암이나 에이즈와 같이 무서운 질병의 경우, 외래어나 전문용어를 사용하여 'cancer' 또는 'HIV'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외설적인 느낌을 주는 섹스 역시 영어에서 온 말이지만, 완곡성이 거의 사라져 다시 우리말로 '자다, 잠자리를 같이 하다, 관계를 가지다' 등으로 풀어씁니다. 특히, 거북스럽거나 불결하거나 외설적으로 들리는 말들은 한자어와 외래어를 사용하여 완곡하게 표현하는 일이 많습니다. 가령, 고유어인 '오줌'을 한자어인 '소변'으로 표현하고, 고유어와 고유어로 이루어진 '입 맞추다'라는 말 대신, 외래어와 고유어를 써서 '키스하다'고 말합니다. 또 고유어와 고유어로 된 '아이를 배다'라는 말 대신, 한자어와 고유어로 '임신하다'라고 표현하고, 고유어와 한자어로 된 '뒷간' 대신에, 한자어를 사용하여 '변소'라고 했다가 다시 '화장실'이라고 우회적으로 말합니다. 그리고 고유어인 '이슬' 대신 한자어를 사용하여 '월경'이나 '생리'라고 하고, 다시 외래어를 써서 '멘스'라고 에둘러 표현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외래어를 사용하거나 은유나 상징을 사용할 경우에는, 대개 번역과 해석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므로, 원래의 의미나 어감을 그다지 직감하지 않고서 표현하고 이해합니다. 같은 의미를 지닌 외래어가 더 완곡해 보이는 이유는, 그 뜻이 모국어보다 더 모호하고, 모국어처럼 그렇게 급소를 찌르지 않으며, 다른 연상을 쉽게 불러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충격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갖는 완곡 표현의 직접성의 정도는, 보통 고유어> 한자어> 외래어 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언어적 금기는 완곡 표현으로 이어집니다. 어휘 분야에서 완곡어는 주로 사회적 금기와 관련되어 있고, 금기시되는 말의 대용어가 바로 완곡어입니다. 금기의 해소는, 금기의 대상이나 현상은 그대로이지만, 대개 완곡어나 비유를 통해 금기에 저촉되지 않았다고 여김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쓰기를 함으로써 본래 거북스럽다고 인식했던 것을 수용할 수 있는 것으로 전환하여 심리적 부담감을 해소합니다. 금기어가 단어 차원뿐만 아니라 문장차원으로 실현되듯이, 완곡어 역시 어휘뿐만 아니라 문장 차원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예컨대, "너 동생 돼지네/뚱뚱하네."라는 말 대신 "너 동생 우량아네/통통하네."라고 에둘러 표현합니다. 또 "그는 장사꾼(장사치)이에요."라는 말 대신에 "그는 무역업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던지 "그 집 아들은 전과자예요."라는 말 대신 "그 집 아들은 큰집에 갔다 왔어요."라고 돌려서 말하기도 합니다. 그럼, 이러한 완곡어법은 어떠한 기능을 지니고 있을까요? 완곡어법에는 보통 두 가지 기능, 즉 미화적 기능과 은폐적 기능이 있습니다. 미화적 기능이란 상스러운 말이나 표현하기 거북한 말을 좋은 말로 대체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경우에는 터부시된 행위를 전체 사회구성원들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순화시키거나 미화시킵니다. 이 밑바탕에 작용하는 기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규정된 예의범절의 준수 하에 그것을 행한다〉라고 말입니다. 대개 전통적인 터부 영역에 속하는 것들, 가령, 신체배설물, 성, 질병, 죽음 등에 대한 완곡어는 미화적 기능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은폐적 기능이란 사실을 대체낱말로 위장하거나 애매모호하게 감추는 것을 말합니다. 이 경우에는 전체 사회구성원들의 동의를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이해당사자들이 사태를 그럴싸하게 보이게 하고 터부시된 행위를 숨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 밑바탕에 작용하는 기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지만, 설령 그것을 행하더라도 은폐된 방식으로만 말하고, 다른 것이라고 억지 주장을 한다〉고 말입니다. 실제 생활에서 불편함을 감추기 위해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완곡어로 에둘러 표현합니다. 완곡 표현은 본래의 대상을 변형시키지 않은 채, 단지 그것이 갖고 있는 뉘앙스를 완화하거나 부드럽게 하여, 존재하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로는 오늘날 정치, 경제, 외교 분야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을 들 수 있습니다. 가령, 실직이나 해고를 '명예퇴직(명퇴)'나 '구조조정'으로, 뇌물은 '기부금'으로, 전쟁은 '작전수행(operation)'으로, 침략은 '해방'으로 모호하게 표현합니다. 완곡 표현은 국가나 개별 정권의 약점을 은폐, 위장하거나 비도덕적이고 비난받아 마땅한 역사적 사실을 합리화시키려는 전략에서 사용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2차 세계대전 시기에 일본군이 자행한 '위안부'라는 말은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성노예'를 이르는 말입니다. 또 경제 관련 부처 장관이 국회에 출석하여 물가동향에 관한 질문에, '현 경제 여건상 에너지 요금의 정상화가 필요하다.'라고 답변하는 것은, 지금 물가, 국제수지, 외환 등 전반적으로 경제가 어렵지만 에너지 요금을 인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조만간 올리겠다는 뜻입니다. 이는 단순히 '가리거나 숨기는' 완곡 표현이 아니라, 사태를 적극적으로 '꾸미는' 완곡 표현으로서, 여기에는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기만의도와 은폐전략이 깔려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공동체가 개인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개인이 공동체의 여론형성을 조종하여 영향을 끼칩니다. 일찍이 조지 오웰은 『1984』라는 소설에서 언어에 의해 사상을 통제하고 개인을 철저하게 감시하기 위해 권력자가 완곡어를 교묘하게 위장하여 사용하는 사례를 잘 제시한 바 있습니다. 오웰은 이러한 통제언어에 대해 '뉴스피커(Newspeak)'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오웰은 「정치와 언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정치적 연설과 글쓰기는 대개 옹호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변호라 할 수 있다. [...] 그러므로 정치적 언어는 주로 완곡어법, 즉 논점 회피와 불명료한 모호한 말로 이루어져 있다. 무방비 상태의 마을들이 공중에서 폭격당하고, 주민들이 들판으로 쫓겨나며, 가축들은 기관총에 의해 학살당하고, 가옥들은 소이탄으로 불붙는데, 이를 두고 '평정(pacification)'이라 일컫는다. 수백만의 농부들이 농장을 잃고, 짊어질 수 있는 것만 챙겨 터덜터덜 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이를 두고 '인구 이동(transfer of population)' 또는 '국경 조정(rectification of frontiers)'이라 부른다. 사람들이 재판도 받지 않고 수년간 투옥되고, 목덜미에 총을 맞거나, 북극의 벌목 캠프에 보내져 괴혈병으로 죽어 가는데, 이를 두고 '신뢰할 수 없는 분자들의 제거(elimination of unreliable elements)'라 일컫는다. 만약 누군가가 어떤 것을 그에 대한 관념적 묘사를 떠올리지 않고서 지칭하길 원한다면, 이러한 어투가 필요하다.' 조지 오웰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이러한 완곡 표현은 많은 부분이 흔히 거짓말과 맞닿아 있으며, 일시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임시방편적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완곡어법의 두 가지 기능이라 할 수 있는 미화적 기능과 은폐적 기능은 완곡어에서 각기 별개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이 두 가지의 의미가 함께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완곡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두려움을 느끼거나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상대방에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셋째, 체면 때문입니다. 넷째, 직접적인 표현보다 완곡 표현이 정중하고 예의 바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목적 달성을 위한 전략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보듯이, 완곡 표현의 심리적 기제로는 정서적 요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공포감정과 수치감정, 불쾌감정이 깔려 있습니다. 공포감정은 언어적 금기로 말미암아 생겨납니다. 수치감정은 성적, 생리적 표현 때문에 일어나며, 불쾌감정은 존대법의 파괴나 열등의식, 수치심을 자극하는 표현 때문에 생겨납니다. 완곡 표현은 화자가 청자에게 공포감정이나 수치감정, 불쾌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단어나 표현의 사용을 피하게 해 주고, 그러한 감정들을 야기하지 않는 간접적이고 암시적인 단어나 표현으로 바꾸어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완곡 표현은 비선호적인 표현에 대한 대안으로써 체면손상을 피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비선호적인 표현은 두려움을 야기하고, 불쾌한 터부가 될 수 있으며, 또 여기에는 부정적인 함축의미가 담겨 있어 화자의 의도를 달성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완곡 표현은 정보전달이라는 의미 외에도, 그것에 수반되는 중요한 의미로는 '공손(politeness)'과 '체면유지(face-saving)'를 들 수 있습니다. 사실상 완곡 표현의 바탕 원리는 공손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
언어는 어떤 사물을 표현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표현하지 않기 위해서도 사용됩니다. 어떤 것은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그것을 말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언급되지 않습니다. 이 경우는 언어상의 금기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것을 이야기할 경우에는 빙 둘러서 말합니다. 이것은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완곡어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금기는 초자연적인 이유나 어떤 행동이 도덕률을 어기는 것으로 믿는 이유 때문에, 공동체가 구성원들에게 규제를 가하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그리하여 언어에 관한 한, 어떤 것들은 말해서는 안 되고, 또 어떤 것들은, 특정한 상황에서만, 그리고 특정한 사람들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불가피하게 말을 해야 할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빙 둘러서 완곡어법으로만 언급될 수 있을 따름입니다. 물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운동에서처럼, 금기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신의 자유를 표현하거나, 그러한 제약의 비이성적이고 정당하지 못함을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금기를 깨뜨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언어적 금기현상은 도덕적인 관념상 특정 어휘의 사용을 기피하거나, 다양한 이유에서 특정한 말의 사용이 금지될 때 일어납니다. 그 때문에 금기어에는 '기피, 꺼림, 금지'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금기어는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표현하지 않거나 언행에 조심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입니다. 금기나 금기어가 있는 곳에서는 어느 나라의 언어에나 완곡어가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금기시되는 주제와 맞닿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대신 완곡어를 사용합니다. 완곡어의 사용은 직접적인 표현이 주는 불쾌함이나 충격 등에서 벗어나게 해준다고 인식해 왔고, 따라서 완곡어를 쓰는 것은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금기와 완곡어법은 우리의 언어생활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왜냐하면 직접적으로 언급할 수 없는 사물도 있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말로 표현이 불가능한 것과 증명하기 어려운 것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분명히 알고 있을지라도 사용하지 않으려고 조심하거나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각 사회집단은 언어행위에 제약을 가하는 방식에서 서로 차이가 납니다. 문화권에 따라 금기사항이 다른 것처럼 금기어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금기어의 존재는 보편적이지만, 세부사항은 개별적입니다. 이를테면, 미국이나 유럽문화권에서는 상대방에게 나이나 결혼 유무, 종교, 수입 정도를 질문하는 것은 금기사항입니다. 이러한 것은 언어 예의상의 금기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가 깨뜨려버린 것은 사실상 금기의 껍데기일 뿐 알맹이는 그대로 남아 작동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어떤 사회집단도 금기의 제약 없이 언어를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금기어와 완곡어의 분석을 통해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타문화권의 심층심리를 들여다보고 탐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언어의 원리와 특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극단적인 형태 - 침묵 (1) | 2024.07.14 |
---|---|
금기어의 개념과 특징, 발생 요인 (0) | 2024.07.14 |
비언어적 의사소통 원리와 개념 (1) | 2024.07.13 |
공손과 간접화행의 관계 (0) | 2024.07.13 |
공손성의 원리와 규칙 (0) | 2024.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