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언어적 의사소통의 극단적인 형태 - 침묵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극단적인 형태라 할 수 있는 '침묵(silence)'에 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침묵을 '말하지 않기', 다시 말해,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에서 언어적 발화 사이에 아무런 의사소통이 일어나지 않는 공백시간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상적인 이해는 정확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침묵을 '말하지 않기'와 동일시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어떤 특정한 의미가 담긴 침묵과 단순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침묵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이 둘은 음향적으로는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올바로 해석해내기 위해서는 상황과 맥락이 동원되어야 합니다. 가령, 의사소통이 기대되지 않는 시점에 침묵이 행해질 경우, 이러한 침묵에는 아무런 의미가 부여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길거리나 버스 안에서 모르는 사람을 볼 경우, 아무 말 없이 그 사람 곁을 지나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우에는 어떠한 커뮤니케이션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말을 해야 할 순간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잠을 자거나 혼자서 운전을 할 때의 침묵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러한 경우의 침묵은 '의사소통적 침묵'으로 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침묵이 기대되지 않는 상황에서 침묵을 지키는 행위는 언제나 의사소통적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의사소통적 침묵'은 단순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입을 다물고 있는 것과는 구별됩니다. 대화를 할 때, 말하기가 예상되는 곳에서 나타나는 침묵은, 말하기와 마찬가지로 의사소통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침묵은 말할 수 있거나 말해야 하는 상황을 전제로 합니다. 언어는 일정한 형식과 의미가 결합되어 이루어집니다. 실제 의사소통에서는 대개 언어적 요소와 강세나 억양과 같은 준언어적 요소, 그리고 비언어적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져 실현됩니다. 예컨대, 엄마가 집에 늦게 들어온 딸에게 "아직도 그 남자 만나고 다니니?" 라는 물음에, 우리는 딸의 대답을 여러 가지로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가. 아니. 나. 아∼니. 다. (고개를 가로젓는다) 라. (……묵묵부답) (가), (나), (다)의 답변은 모두 '부정이나 부인'의 의미를 담고 있지만, (라)는 '대답 유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가)에서는 언어적 요소로 '부정'을 표현하였습니다. (나)에서는 언어적 요소와 준언어적 요소를 함께 사용하고 있는데, 첫음절 '아'를 길게 발음함으로써 '부인'의 강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다)에서는 비언어적 요소인 '동작'을 통해서 부정의 의미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라)에서는 침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 (나), (다)에서와는 달리, 침묵행위에서는 일정한 형식이 없지만, 대화 맥락상에서 특정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와 같이 침묵은 '휴지(休止)'라는 형식과 대화상황이나 맥락에서 부여되는 의미가 결합된 기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침묵은 일정하게 지속되는 휴지라는 시간적 흐름을 가지고 있으며, '무형식의 형식'이지만 실제 의미는 의사소통의 과정에서 파악됩니다. 의사소통적으로 볼 때, 침묵은 언어적 의사소통 채널에서 비언어적 의사소통 채널로 의도적으로 교체될 때 일어납니다. 침묵은 무언의 발화행위를 형성하며, 그 자체가 메시지가 되거나 메시지의 일부가 됩니다. 따라서 침묵은 비언어적 요소로서 기호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의사소통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됩니다. 침묵은 의사소통 맥락과 언어공동체의 문화적 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말하기가 1차적이고 우위를 점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침묵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거나, 고려되더라도 아주 하위에 위치하는 미미한 요소로 여깁니다. 하지만 실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말과 침묵은 어느 한쪽이 우위를 점하는 위계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말과 침묵은 서로 직접적인 대립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화연속체를 구성하고 있는 실질적인 양대 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하기와 마찬가지로 침묵 역시 구어(입말)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보통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에서, 침묵행위는 말의 중단으로 이해됩니다. 하지만 말하기와 침묵은 상호 보완적이며 변증법적인 단위를 형성합니다. 말은 듣기를 필요로 하는데, 이때의 듣기는 침묵행위로써 경청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듣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 행위를 의미합니다. 반대로 듣기는 말하기를 필요로 합니다. 이러한 상호 결속 없이는 이해의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침묵의 문화사
일반적으로 침묵의 중요성은 속담이나 금언 등을 통해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말과 침묵의 관계는 고대부터 다양한 문화권에서 전승되어 온 텍스트에서 그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가령, 그리스·로마 신화, 인디언 신화, 성경, 노자의 도덕경 등을 위시하여 많은 문학작품 등에서 침묵이나 침묵의 깨뜨림이 인간의 행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장면을 수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침묵은 가치나 행동규범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특히 여성의 말과 수다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침묵을 이상적인 것으로 높게 평가한 것은 고대에서부터 오늘날까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신학과 철학에서도 침묵은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와 불교 등을 위시한 종교공동체에서는 침묵, 즉 명상이나 묵상을 수행의 중요한 길잡이로 간주합니다. 이와 같이 침묵은 세계의 많은 종교와 철학에서 근원적인 토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한 문화에서 침묵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해석되는가 하는 것은 다양한 문화적 요인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모든 문화권에서 침묵의 '사용'을 강조하는 것은, 침묵이 단순히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참여자에 의해 능동적으로 그 의미가 창조되기 때문입니다. 의사소통과 관련지어, 우리는 문화를 크게 '말 문화'와 '침묵 문화'로 구별해 볼 수 있습니다. 보통 미국이나 프랑스, 독일과 같은 서구사회는 말문화에 속하고, 한국, 일본, 중국과 같은 아시아권 국가는 침묵문화에 속합니다. 침묵은 상이한 문화적 해석규범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지니는 비언어적 의사소통 행위입니다. 예컨대, 미국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만날 때 침묵을 지키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편입니다. 특히 친하지 않은 사람들 간의 침묵은 더욱 터부시됩니다. 오히려 상대방과의 관계가 친근할수록 말을 적게 할 수 있습니다. "말의 기능 중 하나는 침묵을 피하게 해주는 것이다." 라는 격언은, 상투적인 인사나 잡담 그리고 일상에서 주고받는 대화의 중요성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서구에서는 아시아권의 침묵을 무언가가 결핍된 대화의 부재로 여기고, 부정적인 경향을 보입니다. 이것은 문화적 편견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침묵이란 어떤 목적과 중요성을 담지하고 있는 '무엇' 내지 '어떤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침묵행동은 모든 문화에서 나타나지만, 이 행동이 주는 메시지는 문화 간에, 그리고 동일 문화 내에서도 다를 수 있습니다. 모든 의사소통이 그러하듯이, 침묵은 상황적 맥락에서 그 의미가 드러납니다. 침묵은 다양한 기제로 사용됩니다. 사회에서 침묵이 작용하는 방식을 보면, 첫째, 전통사회에서는 침묵을 사회 통제수단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나쁜 짓을 한 사람에게는 집단적 침묵을 사용하여 벌을 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죄를 지은 당사자와 그 가족과 말을 섞지 않고 왕따시켜 버렸습니다. 아는 체하거나 인사를 하지 않음으로써 침묵을 적개심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사회적 잘못을 행한 사람이 빨리 자신의 행동을 수정하도록 요구합니다. 둘째, 침묵은 권력의 기제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어른이 말을 할 때, 아이들의 침묵/침묵 의무, 상관의 명령과 지시를 묵묵히 기다리는 부하의 침묵, 여성에게 강요하는 침묵의 도덕률 등은 힘의 논리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침묵은 고용주와 피고용인, 상급자와 하급자, 교사와 학생, 어른과 아이와 같은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서 개인 간의 지위를 반영합니다. 지위가 동등하지 않은 사람들이 만날 때, 관찰되는 불균형적인 말의 양이나 침묵은 그 속에 내재된 사회적 위계관계를 잘 보여줍니다. 셋째, 침묵은 응당 지켜야 할 의무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환자나 피고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한 의사의 침묵과 판사의 침묵은 비밀유지라는 직업상의 침묵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넷째, 침묵은 터부의 기제로 작동합니다. 명확한 논리적 근거 없이 입을 굳게 다물거나, 입에 올리지 못하게 하는 경우는, 터부와 침묵이 얼마나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침묵은 모순적으로 보이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사소통적 상호작용에서는 대개 침묵보다 말이 선호됩니다. 그 때문에 침묵은 흔히 부정적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상대방의 침묵은 무관심, 분노, 적개심, 경멸 등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침묵은 이러한 일반적인 해석에도 불구하고 타인에 대한 존경, 심사숙고, 갈등과 충돌을 피하기 위한 표지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침묵의 의미와 전략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침묵의 의미와 전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침묵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침묵은 행위를 하지 않으려는 하나의 욕구일 수 있지만, 이것 역시 그 자체는 또 다시 하나의 행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특정한 행위를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행위이고, 그러한 행위의 중단은 그것에서 기인할 수 있는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화자의 침묵이 어떠한 의도를 지니는지를 파악하지 못할 경우, 그것은 분명 청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언어적 행위가 어떤 목적을 추구하듯이, 청자의 관점에서 볼 때, 화자의 침묵 역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침묵의 배후에 숨겨져 있는 진정한 의도와 기능을 올바로 해석해내고, 모호한 침묵의 의미에 명확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대화의 상황과 맥락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의사소통 상황에서 침묵은 수많은 형태로 나타날 수 있고, 다양한 의미를 가집니다. 가령, 긍정적인 표현으로서 공감이나 찬성, 동조, 이해 등을 나타낼 수 있고, 부정적인 표현으로서 반대나 거부, 비난, 경고, 불만, 반항 등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또 침묵은 무관심에 대한 표현으로서 무시, 냉담, 냉소 등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또 이해의 부족이나 상황파악의 결여로서 당혹감과 놀라움, 부끄러움, 망설임 등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침묵은 공손표현으로서 존경과 배려의 뜻을 가지기도 합니다. 사실 침묵에는 일정한 형식이 없습니다. 침묵하는 사람은 자신의 속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어느 정도 감출 수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언어적 표현 이상으로 침묵을 적절하게 사용합니다. 청자의 입장에서는 침묵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요소들을 동원합니다. 일반적으로 침묵은 사전에 미리 계획하여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미리 계산된 침묵행위는 자연스런 대화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묵 역시 그때그때의 대화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언어적 전략의 일부로 간주됩니다. 언어전략이란 의도나 목표를 실현시키고 관철시키기 위한 언어적, 비언어적 수단의 선택과 사용을 말합니다. 따라서 침묵도 하나의 의사소통적 전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침묵전략으로는 회피전략, 은폐전략, 유보전략, 무시전략 등이 있습니다. 침묵을 행사하는 주체는 상대방의 말에 대한 반응 태도에 따라,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여부에 따라 이러한 전략을 적절하게 사용합니다. 먼저, 회피전략을 살펴보면, 이것은 침묵함으로써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비켜가려고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침묵을 지키는 것이 공손한 관습에 속하는 상황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러한 형태의 침묵을 '형식적 침묵'이라 합니다. 즉, 특정한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관습적인 행위를 말합니다. 이것은 형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침묵을 지키는 것보다 말을 하는 것이 오히려 타인의 체면에 더 큰 위협이 될 때 일어납니다. 형식적 침묵은 보통 우리가 실수를 하는 상황에서 경험하게 되는 침묵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대화중에 상대방이 트림을 하거나 방귀를 뀔 때, 대개 모른 척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형식은 침묵을 지키는 일입니다. 영미권에서는 상대방이 재채기를 할 경우, 예의상 "bless you!"라고 말하는 것이 관습적인 반면, 한국문화에서는 침묵이 관습화된 반응입니다. 때로는 침묵이 정반대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모른 척한 침묵이 오히려 불편한 심기를 감추는 것으로 오해될 수도 있습니다. 말을 할 것인가, 침묵을 지킬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언제나 대화당사자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말이나 침묵이 상대방에게 체면위협 행위로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회피전략으로서의 침묵행위는 선행 발화나 선행하는 상황과 관련지어 해석됩니다. 두 번째로, 침묵은 은폐전략으로 사용됩니다. 은폐는 의도적으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의사소통을 피하는 것을 말합니다. 은폐전략에서는 침묵을 특정한 상황에서 무엇인가를 숨기거나 감추고, 비밀에 부칠 때에 사용합니다. 이로 인해 긍정적인 결과나 부정적인 결과가 초래됩니다. 은폐전략에서는 침묵함으로써 비교적 안전하게 비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침묵은 우리가 알지 못하거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실과 결부되어 있지만, 은폐전략에서는 대화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 적어도 한 사람은 실상을 알고 있습니다. 예컨대, 경찰서에서 형사가 도둑을 심문하는 장면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형사: 사실 대로 말해요. 도둑: (……묵묵부답) 형사: 당신과 공모한 자가 누구누구인지 밝히세요. 도둑: (……묵묵부답) 이러한 가상대화에서 도둑은 형사의 취조에 대해 공모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모자를 보호하기 위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침묵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회피전략과는 달리, 은폐전략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은폐의 목적은 실로 다양합니다. 가령, 의사의 침묵이나 법조인의 침묵, 그리고 은행원의 침묵 등은 직업상의 침묵에 해당됩니다. 이 경우 침묵은 법적인 의미에서 비밀엄수 기능과 보호기능을 가집니다. 다음, 세 번째로 침묵은 유보전략으로 사용됩니다. 유보전략은 입장을 표명하기가 곤란한 특정한 사안에 대해 침묵함으로써 상황을 피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의사소통 과정에서 대화참여자는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 상반되는 의견이 제시되거나, 상대의 입장과 자신의 입장이 일치하진 않지만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에 자주 직면합니다. 이런 경우 대화참여자는 〈좀 더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는 의미로 침묵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유보전략은 다른 참여자를 배려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고,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합니다. 유보전략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는 점에서 첫 번째의 회피전략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회피전략이 상대방의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 알고도 모른 척함으로써 상대방을 배려하는 반면, 유보전략은 어떤 사안에 대해 자신의 입장표명을 유보함으로써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마지막으로, 무시전략을 살펴보면, 이것은 대화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침묵함으로써 상대방을 무시하고자 할 때 주로 발생합니다. 이러한 무시전략은 견해차가 너무나 크거나 말다툼을 하는 와중에 일어납니다. 대화상대방의 공격적인 언사에 대해 침묵으로 당혹감이나 무시를 표명할 수 있습니다. 무시전략은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전략에 비해 강도가 가장 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의도적인 침묵행위에는 일정한 전략이 따릅니다. 은폐전략은 대화에서 무시전략 다음으로 강도가 세고, 고도로 활용되는 의도적인 침묵전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보전략은 주로 선행발화 내용이나 대화주제에 대해 입장표명을 유보하는 반면, 회피전략은 상대방의 실수를 너그러이 눈감아 줍니다. 따라서 유보전략과 회피전략은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점에서 은폐전략이나 무시전략과 확연히 구별됩니다. 의사소통 상황에서 대화참여자가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침묵전략은 대개 긍정적인 결과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각 전략이 지니는 의미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맥락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보통 회피전략과 유보전략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은 반면, 은폐전략과 무시전략에는 부정적인 측면이 많습니다. 침묵은 의사소통의 과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침묵전략은 '선행 발화에 대한 반응'이나 '선행 화자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적영역을 지키거나 자신의 신념을 견지하기 위해 뭔가를 감추게 됩니다. 무엇인가를 숨기고 감추게 되는 가장 큰 동기는 체면손상에 대한 불안과 다소 무거운 제재에 대한 불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어적 표현에서도 겉으로 드러난 명시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전제와 내포적, 함축적 의미가 있듯이, 비언어적 표현인 침묵에서도 다양한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침묵의 의미는 언어처럼 명시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가 항상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심층 텍스트'라 할 수 있습니다. 침묵에서는 실제 아무것도 소리 내어 말한 바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를 말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리
우리는 언어가 아닌 비언어적 매체를 통해서도 수많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의사소통의 본질은 근본적으로 의미의 전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언어적인 수단을 사용합니다. 일상생활에 있어 언어에 의한 의사소통의 중요성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언어에 의하지 않는 의사소통을 들 수 있습니다. 언어에 의한 전달행위를 '언어적 의사소통'이라고 보면, 언어에 의하지 않는 전달행위를 '비언어적 의사소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어적 수단에 너무 무게를 둔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언어적 수단에 대해서는 그다지 주목을 하지 않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의사소통에 있어 주변부에 머물러 있는 비언어적 의사소통이 이루어내는 역할은 실로 막대합니다. 해당 연구결과에 따르면, 의사소통에서 사용하는 언어적 수단은 30% 정도인 반면, 비언어적 수단의 비율은 대략 70%를 차지합니다. 얼굴표정, 시선, 제스처, 자세와 같은 신체언어를 위시하여 신체접촉, 시간, 공간 등이 대표적인 비언어적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범위를 넓히면,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 장신구 등도 비언어적 기호로서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중요한 판단은,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비언어적 행동을 토대로 이루어집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언어적 기호와 마찬가지로 비언어적 기호에 대한 올바른 의미 해석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비언어적 행동에 대한 인식이나 사용은 동일 문화 내에서도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타문화권의 사람들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비언어적 수단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입니다. 가령, 시간의 사용법에 대한 태도에서만 보더라도, 어떤 나라는 시간을 엄수하는 것을 상당히 높은 사회적 가치로 간주하는 반면에, 시간에 커다란 가치를 두지 않는 나라도 있습니다. 이처럼 비언어적 행동양식도 문화에 따라 상당히 차이가 납니다. 문화 간에 존재하는 이러한 비언어적 기호의 의미나 차이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다른 문화의 행동양식을 자신이 속한 문화의 행동양식으로 판단한다면, 의사소통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언어적 오류보다 잘못된 비언어적 행동양식이 대인관계에서 한층 더 많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극단적인 형태라 할 수 있는 침묵 역시 의사소통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합니다. 침묵은 언어적 표현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빈 상태는 결코 아닙니다. 의사소통에서 일어나는 침묵은 말로 표현되지 않았을 뿐, 무수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침묵의 의미는 대화상황이나 맥락과 같은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그 의미를 개략적이나마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어적 의사소통과 비언어적 의사소통은 의사소통의 양대 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어적 의사소통은 주로 메시지의 내용을 비롯해 논리나 사고의 측면을 전달하는데 비해, 비언어적 의사소통은 주로 감정과 같은 정서적 측면을 전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비언어적 행위는 언어적 행위와는 별개로 독자적으로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언어적 행위를 보완하거나 대체하면서 함께 실행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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